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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23 조회수1,046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8월 23일 연중 제21주일
 
Master, to whom shall we go?
You have the words of eternal life.
We have come to believe
(Jn.6,68-69)
 
 
제1독서 여호 24,1-2ㄱ.15-17.18ㄴㄷ
제2독서 에페 5,21-32
복음 요한 6,60-69
 

요즘에는 남성도 화장하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시대에 뒤떨어졌는지 오히려 전혀 화장을 하지 않고 삽니다. 그래도 전에는 스킨과 로션을 바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예 하지 않습니다. 귀찮기 때문입니다. 화장품을 바르지 않으니 처음에는 약간 피부가 땅기는 느낌도 있었지만, 몇 달이 지나자 이제 그런 느낌조차 없습니다. 이러한 저인데 지난 여행 때에는 어떠했을까요? 마찬가지로 선크림을 포함해서 아무런 화장품을 바르지 않았더니 아주 새까맣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이래야 휴가 다녀온 티가 나잖아.”

하지만 실상은 저 역시 하얀 피부, 깨끗한 피부를 원한답니다. 그래서 어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남자 화장하는 법’이라고 말이지요. 꼼꼼하게 읽어 본 뒤에 그냥 이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저를 데리고 살겠다는 분은 없으니까요. 저의 지금까지의 화장은 아무리 길어도 10초면 끝나는데(스킨 5초, 로션 5초), 이 화장법으로는 아무리 짧게 해도 10분은 걸릴 것 같더군요(여자들은 더 길다고 하지요?).

이 화장법을 보면서, 사람들이 왜 날이 갈수록 예뻐지고 멋지게 변하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노력 없이 뽀얗고 깨끗한 피부를 원한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겠지요.

예쁘고 멋지게 변하려면 그만큼 노력을 기울여야 하듯이, 참 행복의 길로 가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절로 하느님께서 알아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시간도 소비해야 합니다. 그때 정말로 멋지고 아름다운 행복의 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공짜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절로, 알아서 다 이루어지길 원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더군다나 나는 많은 이익을 얻어야 하고, 그러한 이익을 얻은 뒤에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타당성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를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저절로 이루어지길 원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늘 불평불만이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눈에 보이는 물질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많았나 봅니다. 예수님을 쫓아다니면 굶을 걱정도 또 아플 걱정도 없을 줄 알았지요. 그러면서 세상의 부귀영화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철저한 사랑의 실천만을 강조하십니다. 뭐 예수님께 받은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내어 놓으라고 하니 도저히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는 가장 중요한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았지요.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 무엇을 청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물론 세상의 물질적인 만족을 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점점 주님을 멀리하고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행복의 길을 찾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때는 주님을 절대로 떠날 수가 없습니다.

목표에 정성을 쏟으면 목표도 그 사람에게 정성을 쏟는다. 계획에 정성을 쏟으면 계획도 그 사람에게 정성을 쏟는다. 무엇이든 좋은 것을 만들어 내면 결국 그것이 그 사람을 만드는 법이다(짐 론).


아름다운 호수마을 할슈타트. 그러나 원래는 오폐수로 너무나 지저분했던 호수였다고 하지요?

 

멀리 보고 걸어라.

할아버지와 손자가 눈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손자가 걸어온 길을 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글쎄 자신의 발자국은 비뚤비뚤한 반면, 할아버지의 발자국은 곧게 나 있는 것입니다. 손자는 똑바로 걸으려고 노력하며 한참을 걸은 뒤 다시 뒤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자신이 걸어온 길은 비뚤비뚤한 반면, 할아버지는 곧게 나 있었습니다.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이 점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똑바로 걸을 수 있는지를 말이지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앞만 보고 걸었지? 할아버지는 운동장 건너의 큰 나무를 보면서 걸었단다.”

우리의 삶 안에서 혹시 이 손자의 모습처럼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떤 목표 없이 그저 앞만 보면서 나아가고 있다면 분명히 똑바로 걷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를 바라보면서 걸어간다면 가장 빠르고 똑바른 길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다흐슈타인에서 찍은 할슈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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