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교황님 미사강론]"우리는 역사입니다"(2014년 12월 18일 목요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26 조회수842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는 역사입니다. (2014년 12월 18일)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4/documents/papa-francesco-cotidie_20141218_we-are-history.html

http://www.news.va/en/news/we-are-history-18-december-2014

 

-----------------------------------------------------------------------------

[교황님 강론 날짜] 2014년 12월 18일 목요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제1독서: 예레미야서 23,5-8

화답송 : 시편 72(71),1-2.12-13.18-19ㄱㄴ(◎ 7ㄴㄷ 참조)

복음: 마태오 복음 1,18-24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6247&gomonth=2014-12-18&missatype=DA

-------------------------------------------------------------------------------

 

 

프란치스코 교황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아침 묵상

 

우리는 역사입니다.

 

2014년 12월 18일 금요일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15년 1월 1,2 주간 영어판(L'Osservatore Romano, Weekly ed. in English, n. 1, 2 January 2015)]

 

삶에서 피할 수 없이 일어나는 그 “힘든 때”에 당신은 우리를 통해 역사를 만드시는 하느님, 우리가 실수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역사를 바로 잡아 주시는 하느님의 손에 그 난제들을 맡기고 용기를 갖고 그 난제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12월 18일 목요일에 미사에서 교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말씀 전례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묵상했다고 말하면서 교황은 강론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묵상은 아침의 마태오 복음(1:18-24) 구절로 우리에게 “그 구원은 언제나 역사 안에 있다. 즉, 역사 없이 구원 없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면서 마무리 됩니다. 실로 오늘 우리가 다다르려 하는 의미에 이르기 위해서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긴 역사, 놀라울 정도로 긴 역사가 이어져 왔는데 이는 어제 교회가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기로 고른 그 구절입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역사 속에서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원하셨던 구원은 조작된 방부제 같은 구원이 아니라 “역사적인” 구원입니다. 그리고 교황은 “하느님께서 역사 안에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 여정을 만드셨습니다.”라고 확신에 차 말했습니다. 제 1 독서 예레미야서(23,5-8)는 “이 역사의 국면에 대한 아름다운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교황은 지적하며 성경 말씀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할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걸음, 또 다른 국면”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한 걸음 한 걸음 만들어집니다. 즉, 하느님께서 역사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역사를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을 할 때 하느님께서 역사를 바로 잡아 주시고 우리와 함께 걸으시면서 우리를 앞으로, 앞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아무튼 이것이 우리에게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크리스마스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말씀이 사람되심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절대로.” 교황은 말하기를 “그것 모두 걸어서 나아가는 역사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크리스마스로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지금 아직도 우리를 역사 안에서 구원하고 계시고 그분의 백성과 함께 걷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성사와 기도, 설교와 그 첫 번째 선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역사와 함께 계속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또한 “죄를 요하는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죄는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도 “상당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나아 가셨습니다.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앞으로 나아 가십니다.” 

 

그러나 이 역사 안에서 “몇몇 어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적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역사를 이끄시려고 그리고 그분의 백성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게 하려는 선택된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어려운 순간들, 우두운 순간들, 힘든 순간들이 있습니다.” 교황이 상기시키기를, “아흔 살의 온유한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와 함께였습니다. 그는 아들이 없었지만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주님께서 그를 방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그의 땅을 떠나 여정을 시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흔 살”이었고 분명히 그때는 그에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세에게 일어났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도망 나왔습니다. 그는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장인은 큰 부락을 이끌고 있었고 그가 그 부락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여든 살이었고 “그는 그의 아들들에 대해 그가 그들에게 남기고 갈 유산에 대해, 그의 아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주님께서 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 그분의 백성을 해방시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 미디안의 땅에 있던 모세에게는 그 순간이 편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괴롭히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지만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이 일을 하겠습니까?”라고 물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기를, 그래서 “주님께서는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괴롭히십니다. 그분께서는 그토록 여러 번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길로 가도록 만드십니다.” 그리고 교황은 그리고 나서 엘리야의 이야기를 상기시킵니다. “주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바알의 모든 거짓된 예언자를 죽이라고 하십니다. 여왕이 그를 위협할 때 그는 그 여인이 두렵습니다. 예언자 400명을 죽였던 그 남자가 한 여성을 두려워하여 두려움으로 죽을 지경이어서 계속 나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실로 “힘든 순간”이었습니다.  

 

교황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마태오 복음 구절에서 “오늘 우리는 구원의 역사 속에서 또다른 힘든 시간에 대해 읽었습니다. 그런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심 인물은 “약혼한 요셉”입니다. 그는 진실로 신부가 될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사촌을 도우러 갑니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올 때 임신의 첫 표시가 보입니다. 요셉은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는 장터에서 마을에서 수군거리를 여자들을 봅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며 요셉은 마리아에 대해 자기자신에게 말합니다. ”이 여인은 선한 사람이다, 나는 그녀를 안다! 그녀는 하느님의 여인이다. 그녀는 나에게 무슨 일을 한 것인가?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나는 그녀를 고발해야 하고 그녀는 돌을 맞을 것이다. 그들은 마리아에 대해 온갖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해 이 짐을 그녀에게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부정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그 난제를 자기 어깨에 지고 자신이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장터에서 ‘수다쟁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봐봐, 그는 아이를 가진 그녀를 떠났어. 도망가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해.’” 요셉은 오히려 “자기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약혼녀에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피하기 위해 자신이 죄인,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이 “그 난제들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의 어깨에 짊어 짐으로써” 그들의 어려운 때에 역사를 만듭니다. 교황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모세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모세가 바닷가에서 파라오의 군데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때 군대는 바로 저기에 오고 있었고 바다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모세는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당신께서는 저를 잘못 이끄셨습니다, 주님!” 그러나 그때 그는 스스로 그 난제를 짊어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되돌아 가 타협할 것인가, 싸워서 패배할 것인가, 주님 안에 믿음을 두고 스스로 죽을 것인가.” 이 선택 대안들을 직시하고 모세는 두 번째 대안을 선택하고 그리고 “주님께서는 역사를 만드십니다.” 모세를 통해서, “바로 이 순간에, 이렇게 꽉 막힌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교황은 그때 다른 요셉의 이야기로 거슬로 올라가 언급했습니다. “야곱의 아들 말입니다. 그의 형제들은 질투심에서 그를 죽이고 싶어 했고 그래서 그를 팔았고 요셉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 교황은 요셉의 고통을 강조했는데 “요셉은 경호대장의 아내와 문제가 있었지만 그는 그 여인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귀한 사내입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이 부정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이 그 불쌍한 경호대장을 파멸시켰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요셉은 ”묵묵히 입을 닫고 그 문제를 자기 어깨 위에 짊어 지고 감옥으로 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를 풀어 주십니다.”

 

복음으로 돌아가서 교황은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요셉이 그의 삶에서 가장 나쁜 시기에, 가장 어두운 순간에 스스로 그 난제를 짊어졌습니다. 타인의 눈에서 자기 신부를 감싸기 위해서” 스스로 비난당하는 일까지 짊어집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하기를, “아마도 어떤 심리학자들”은 이것은 빠져 나오려고 노력하는 “응축된 고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 멋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셉은 그의 신부를 이렇게 말하면서 맞아들입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나에게 이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분은 내 아들로 나타나실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께 그분의 백성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걸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그분이 택하신 사람들을 시험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이지 “그분이 선택하신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가 보아왔던 이 사람들처럼 어둡고 고통스러운 힘든 시간을 견뎌 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님께서 오십니다.” 교황은 상기시켰습니다. 복음은 그분께서 “천사를 보내신다”고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는 계속 되므로 이것이 끝이라고 말하지 맙시다. ― 그 직전의 순간입니다. 예수님 탄생 전의 역사. 즉 그리고 나서 다른 역사가 다가옵니다.”

 

이 묵상들을 생각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시 언급합니다. “가장 나쁜 때에도, 병이 든 순간에도, 아무리 해도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병자성사를 청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언제나 이렇게 기도할 것을 우리가 기억합시다. ‘주님, 역사는 저에게서 시작되지 않았고 저에게서 끝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계속 나아가시며 저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모세와 엘리야와 요셉, 그리고 또한 너무나 많은 하느님의 선택된 사람들의 마음가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걷습니다. 하느님께서 역사를 만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하느님께서 가장 어려운 순간에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바오로에 따르면 그분은 우리의 아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의 기도와 함께 강론을 마쳤습니다. “주님께서 역사 안에서 그분 백성과 함께 하시는 그분 여정의 이 신비를 우리가 깨닫도록 해 주시기를. 죄인처럼 보일지라도 요셉을 생각합시다 ― 역사와 함께 해 나가기 위해 자신의 고통과 난제를 스스로 떠안는 선택된 사람들을 그분께서 시험하시는 이 신비를 깨닫게 해 주시기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