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 요한 세례자 수난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29 조회수802 추천수11 반대(1)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란은 조그만 충격에도 깨지기 쉽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위는 웬만한 충격에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더러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적자생존, 승자독식, 빈익빈과 부익부의 질서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의 90%는 엄연한 생존의 경쟁에서 견디지 못하고 멸종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의 부는 상위 10%의 사람이 9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욱 가난하게 되고, 부유한 사람은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서의 세계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려는 사람을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그렇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10명만 있어도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셈법이 그렇습니다. 작은 돌팔매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무너트린 다윗이 그렇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로 5000명이 넘는 사람을 배불리 먹이려고 하신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일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 진료 병원을 시작하셨던 요셉의원의 선우경식 선생님이 그렇습니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하였던 꽃동네의 오 웅진 신부님이 그렇습니다. 고난의 현장에 늘 함께하는 분들이 그렇습니다. ‘팽목항, 강정마을, 밀양, 평택, 용산에서는 지금도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개발, 발전, 경제, 자본이라는 커다란 산에 드리워진 그늘에는 소외된 이들의 가녀린 신음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이번 주 복음 말씀은 위선, 편견, 가식, 교만, 욕망의 껍질을 깨야한다는 예수님의 외침이었습니다. 2000년 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운동 역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큰일을 앞둔 사람들에게, 평소와는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함께하고 있음을 믿으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세례자 요한은 주연은 아니지만, 조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생활을 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자 요한에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따라서 제자가 되었고, 세례자 요한을 오시기로 한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앞으로 오실분의 길을 준비하러 왔습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하고, 저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신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의자를 생각합니다. 성당에 와도, 식당에 가도, 차를 타도, 집에 가도 우리는 의자를 볼 수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앉습니다. 의자들은 우리들의 지친 몸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비워줍니다. 의자가 없다면 우리는 참으로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의자를 생각하며, 예수님을 위해서 기꺼이 의자가 되어준 세례자 요한을 생각합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기꺼이 남을 위한 의자가 되어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어머니, 본당의 많은 봉사들은 가족들을 위해, 하느님을 위해 사랑의 의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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