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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묵상] 세례자 요한의 황홀한 일몰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29 조회수928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세례자 요한의 황홀한 일몰


 

구약시대의 마지막 대예언자로서 구세주 오심을 지극정성으로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의 황홀한 일몰을 묵상합니다. 참으로 겸손했던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하시자 잘 차려놓은 무대를 지체 없이 예수님께 넘겨드리고 자신은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을씨년스럽고 신산(辛酸)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악한 복수의 화신 헤로디아의 희생양이 됩니다. 어둡고 깊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목이 잘려져 쟁반 위에 담겨집니다. 그리고 그 쟁반 위에 담겨진 세례자 요한의 머리는 헤로디아 앞으로 배달됩니다. 그 머리를 보고 깔깔대며 희희낙락했을 헤로디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의인 중에 의인이었던 세례자 요한의 이 끔찍하고 고통스런 최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정도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억울한 죽음은 어쩌면 곧 뒤따라올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선구자이자 예언자였던 세례자 요한의 죽음 안에는 더 억울하고 더 천부당만부당한 예수님의 죽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땅을 거쳐 간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고통, 가장 큰 슬픔, 가장 큰 좌절을 느꼈던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분은 세례자 요한이 당했던 참수의 고통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처참한 십자가형의 고통을 겪으신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고통을 겪으신 분, 고통의 가장 극점에 가면 거기에 누군가가 한 분이 서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고통의 인간, 십자가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슬픔을 치유해주기 위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을 몸소 겪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수난 당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와 고통, 십자가와 죽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을 예수님이 구원하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 자신이 먼저 밑바닥 인간의 연약함과 질병과 고통을 직접 짊어지셨고, 고난과 저주의 쓴잔을 기꺼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무게가 너무 무거워 죽을 지경인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조금만 참아. 힘내!” 하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우리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선택하셔서 직접 지고 우리보다 앞서 가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던지 굳이 당신이 겪지 않으셔도 될 고통조차도 함께 겪으신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보다 더 큰 고통을 겪으시면서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십니다.


 

결국 세상살이가 힘들 때 마다, 고통이 너무 커서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은 하느님 아버지의 극진한 자비의 표시인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곳에서만이 우리는 참 위로와 참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과 십자가, 일부러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청했습니다. “아버지 피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주십시오.” 하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십자가가 있습니다. 백번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사건, 난 데 없이 다가온 정말 원치 않은 불행, 이유가 없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런 신비로서의 십자가 앞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긍정적 수용과 하느님의 시간을 기다리기 이 두 가지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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