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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당신은 어리석은 처녀인가, 슬기로운 처녀인가? (마태25,1-13)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29 조회수1,305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828/주일복음말씀묵상()/ 당신은 어리석은 처녀인가, 슬기로운 처녀인가?

(마태25,1-13)

 

마태25,1절은 그때에 하늘나라(천국)는 마치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때에라는 말은, 임재(parousia)의 시기에를 뜻한다. 그때에 하늘나라는 열 처녀로 비유될 것이다!

처녀는 생활면에 있어서 믿는 이들을 상징한다(2코린11:2). 하느님나라의 백성인 믿는 이들은 순결한 처녀들과 같아서 어두운 시대에 주님의 증거인 을 지니고 있으며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세상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서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영의 내주하심뿐만 아니라 충만함도 역시 필요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첫째로 처녀들이다! 처녀가 되는 것은 일이나 봉사나 활동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이다. 더구나 우리는 단지 처녀일 뿐 아니라 정결하고 순결한 처녀이다. 처녀가 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우리 자신이 내 안에 내주하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어떠한가의 문제이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우리는 모두 처녀들이다. 나는 비록 나이 들었지만 처녀같이 처신하려고 기도한다! 어떤 경우이든지 나는 결코 처녀인 내 신분을 팔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원수의 목전에서도 나는 처녀일 뿐이다!

 

1절은 처녀들이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밖으로 나갔다고 말한다.

()이란 믿는 이들의 영()을 상징하는데(잠언20:27), 거기에 하느님의 영을 기름으로 담는다(로마8:16)! 곧 믿는 이들의 영인 등 안에는 빛인 성령이 계시고, 그들의 영 안으로부터 하나님의 영의 빛으로 빛을 낸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이 시대의 어둠 안에서 빛을 발하는 등처럼 세상의 빛이 되어(마태5,14-16; 필리2,15-16),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주님의 증거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처녀들로서 우리는 하느님을 증거하고 빛을 발하고 비추기 위한 등()을 들고 있다. 우리의 손 안에는 주님의 증거를 위해 빛을 발하는 등이 있다.

 

처녀들은 나갔다는 것은 믿는 이들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맞으려고 세상에서 나왔음을 상징한다. 처녀들은 어느 곳에서도 머뭇거리거나 정착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신랑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요한3,29; 마태9,15). 이 비유에서 주님은 자기 자신을 가장 즐겁고 매력적인 사람인 신랑으로 비유하셨다. 얼마나 좋은가! 이처럼 우리는 나가고 있는 처녀들이요, 그분은 오시고 있는 신랑이시다!

 

2절은, “그 중에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고 말한다.

다섯은 넷에 하나를 더해서 이루어진 숫자이다. 그것은 하느님(하나로 상징됨)이 더해진 사람(넷으로 상징됨)이 책임을 맡는 것을 상징한다. 여기서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롭다는 사실은 믿는 이들 절반은 미련하고 나머지 절반은 슬기롭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 될 책임을 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해질 때 우리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2절은, 다섯 처녀는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롭다고 말한다. 책임을 맡는 데 있어서 슬기로운 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주 예수님은 어리석은 자들을 먼저 언급하신다. 어리석다는 것이 이 다섯 처녀들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본성에 있어서 그들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동일하다!

 

3절은 그들이 어리석은 이유를 말해 준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지 있지 않았다”, 기름은 하느님의 영, 곧 성령을 상징한다(이사61,1; 히브1,9). 어리석은 자들은 등만 가졌을 뿐 그릇에 여분의 기름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어리석고 미련했다. 거듭나게 하시는 그 영에 추가해서, 그들은 내적 충만의 그 영 곧 여분의 성령을 갖지 않은 것이다!

 

4절은 그러나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느님을 위해 만들어진 그릇이고(로마9,21; 23-24), 사람의 인격은 그의 혼 안에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릇이란 믿는 이들의 혼을 상징한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에 기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릇에도 여분의 기름을 가졌다. 등에 기름을 갖는다는 것은 그들의 영 안에 하느님의 영이 있음을 상징하고(로마 8,9;16), 그릇에 기름을 담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혼을 흠뻑 적시는, 곧 영에서 혼으로 확장된 하느님의 영의 충만함을 갖고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등과 그릇에 관해 매우 분명해야만 한다! 잠언20,27절은 히브리어 원문에 따르면, “사람의 영을 여호와의 등이라고 말한다. 등 안에는 기름 곧 성령이 있다. 신약은 우리의 영이야말로 성령이 내주하시는 장소임을 계시한다! 우리는 하느님이 만드신 그릇들이다(로마9,21).

우리의 존재, 우리의 인격은 우리의 혼 안에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의 그릇은 우리의 혼을 상징한다.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하느님의 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등을 타오르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우리 혼을 충만케 하는 여분의 성령을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에 있다!

우리의 등 안에 기름이 있더라도 우리에게는 혼 안에 들어있는 여분의 기름이 필요하다. 이것은 성령께서 반드시 우리 영으로부터 혼의 각 부분에 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면 우리의 혼 안에는 여분의 성령이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이 여분이 있다면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이다!

만일 여분을 갖지 못했다면 우리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처녀인 것이다!

달리 말해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 중에서 성령의 내적 충만에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어리석고 미련한 처녀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지혜롭다면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주여,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저는 당신의 영이 제 영 안에만 계실 뿐 아니라, 제 혼 안에도 계시길 원합니다. 주여, 저에게는 그 영의 내적 충만이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저의 전 존재를 채우는 여분의 성령이 필요합니다.” 이 여분의 성령이 없이는, 우리가 깨어 있을 수도, 예비하고 있을 수도 없다! 깨어 있고 예비하고 있으려면 성령의 내적 충만, 곧 성령 자신이 우리 영으로부터 혼의 모든 부분, 곧 생각, 감정, 의지에 퍼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부분의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부분의 충분히 이해를 위하여 http://cafe.daum.net/yoondaniel <영적 성장과 영적인 사람에 대한 묵상>편을 필독서하시기를!>

 

5절은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고 말한다. 실로 주 예수님은 그분의 재림을 지체하셨다. 요한묵시록에서 그분은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지만, 거의 이천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분은 그분의 오심을 지체하고 계신다. 신랑이 더디 왔기 때문에 모든 처녀들은 다 졸다가 잠이 들었다.” 조는 것은 병드는 것을 상징하고(사도9,37; 1코린11,30), 잠드는 것은 죽는 것을 상징한다(1테살4,13-16; 요한11,11-13). 주님이 그분의 재림을 지체하시는 동안에 믿는 이들 대다수가 먼저 병들게 되고 결국 나중에는 죽는다.

 

6절은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고 말한다. 한밤중이란 이 어두운 시대()가운데 가장 캄캄한 때를 상징한다. 그것은 이 시대의 끝, 즉 대환난의 때일 것이다. “소리는 천사장의 음성을 상징한다(1테살 4:16).

7절은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등을 챙기는데라고 말한다. “일어나라는 말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을 상징한다(1테살 4:14). 이것은 1테살4,16절과 1코린15,52절에 예언된 부활이다. 처녀들은 일어난 후에 등을 챙기며 손질했다.” 이것은 그들이 생활 가운데서 그들의 증거(간증)을 처리함을 상징한다. 곧 이것은 만일 우리가 죽기 전에 온전하지 못하다면, 부활 후에도 주님의 증거를 위한 우리의 생활이 여전히 처리 받아야 함을 가리킨다!

 

8절은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고 청하였다. 이 말씀은 심지어 부활 후에도 어리석은 믿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하느님의 영의 충만함이 필요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꺼져 가니라는 말은 미련한 처녀들의 등이 지금은 켜져 있고 그 안에 기름이 있지만 곧 바닥을 드러내어 충분한 공급을 받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들 안에 계신 하느님의 영에 의해 거듭났지만, 그들의 온 존재()를 흠뻑 적실 정도로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 되지 않은 믿는 이들을 대표한다!

 

9절은 그러자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아무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성령의 충만을 가질 수 없음을 가리킨다! 우리는 다른 많은 것은 빌려올 수 있을지 몰라도 성령의 내적 충만은 절대로 빌려올 수 없다! 이것은 먹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도 당신을 위해서 대신 먹어 줄 수 없는 것이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파는 상인에게 가서 쓸 것을 사라고 어리석은 처녀들에게 말했다.

 

사는 것(買入)은 대가의 지불이 필요함을 가리킨다. 성령의 충만은 세상을 포기하고 자아를 처리하고 모든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손해 보는 것 등의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얻어진다! 만일 오늘날 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부활 후에 지불해야 한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분의 성령을 갖지 못한다! 결국 어리석고 미련한 처녀들은 그들의 마음과 혼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해야 함을 깨달을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포기하고 자아를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볼 것이다. 아멘.

 

10절은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여기서 왔다(came)”라는 말은 그분의 임재(parousia)의 일부분으로서 주님이 공중으로 오셨음(1테살4,16)을 가리킨다. 예비한 자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임이 분명하다(묵시19,9). 우리는 항상 우리 그릇에 여분의 기름을 가짐으로써, 항상 우리 온 존재() 안에 하느님의 영을 가득 채움으로써 예비 되어야 한다(24:44). 깨어 있고 준비하고 예비 되는 것은 주님의 임하심(parousia)을 위한 우리의 매일의 훈련이어야 한다!

 

그분과 같이 들어가는 것은 주님이 임하시는 동안 부활한 믿는 이들이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을 언급한다(1테전4,17). 10절에 있는 혼인 잔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묵시19,9)인데, 그것은 그분이 오시는 동안, 곧 그분이 임하시는 동안 공중에서 베풀어질 것이다(1테살4,17). 그것은 천년왕국이 나타나기 전에 예비 된 믿는 이들, 곧 죽기 전에 성령의 충만으로 준비되었던 믿는 이들에게 주는, 주님과 함께 누리는 상으로서 베풀어질 것이다! 예비 된 자들이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간 뒤에는 문이 닫힌다. 이것은 구원의 문이 아니라, 주님의 혼인 잔치를 누리는 누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11절과 12절은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나중에 왔다는 것은 부활한 믿는 이들의 후기의 휴거를 언급하는 것이다. 그들은 여분의 기름을 위해 대가를 지불했지만, 그것을 너무나 늦게서야 얻었다! 여기에서는 시간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왔을 때 문은 이미 닫혔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충분한 이해를 위하여는 요한묵시록연구”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될 것이다!)

 

그들이 주님께 문을 열어 달라고 청했을 때, 주님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알지 못 한다함은 인정하지 않고 시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루카복음 13,25; 요한1,26,31; 8,19).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에 불을 켰었고, 주님을 맞으려고 나갔고, 죽었고 부활했고 휴거되었지만, 성령의 충만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데 있어서는 늦었다!

이로 인해 주님은 그들이 그분의 혼인 잔치에 참예하는 것을 인정하거나 승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시대적으로는 이 상()을 놓쳤지만, 구원은 영원히 잃지 않는다.

그들에게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실 때 주님은 나는 너희를 좋게 여기지도 않고 너희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땅 위에서 생활했던 방식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또 너희가 너무 늦게 온 것도 인정해 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하늘나라의 잔치의 누림에서 거절될 것이다.

 

13절은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고 결론 맺고 있다. 24,40-44절까지는 오직 이미 예비 된 살아 있는 믿는 이들의 휴거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러나 25,1-13절은 죽은 자들의 휴거를 다루는 데 필요하다!

이 부분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깨어 있어야 하는지를 볼 수 있다! 깨어 있고 예비 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마태복음만큼 자주 이것을 우리에게 경고하는 성경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주의했을 때마다 마태복음에 담긴 이 경고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처녀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은 처녀들인가, 아니면 슬기로운 처녀들인가?

우리 모두는 이 질문을 자문자답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지혜로운지 어리석은지의 여부는 우리가 우리의 그릇() 안에 여분의 성령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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