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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30.♡♡♡ 마음을 다스려라. - 반영억 라파엘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30 조회수1,184 추천수1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반신부의 복음 묵상
 





 


연중 22주일 (마르코7,1-8.14-15.21-23)

 

마음을 다스려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를 구원에로 부르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가운데 우리도 주님의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영화의 한 장면을 보았는데 손 잘린 사람이 발가락을 사용하여 노름을 하더라고요. 그것은 손이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도박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죄짓고 벌 받으러 가는 사람이 부끄럽다고 손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죄를 지었는데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고 마음이 가려지지는 않습니다.

 

때때로‘손 버릇 나쁘다’,‘손 크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마음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고운 손이라도 나쁜 짓을 하는 손은 고운 손이 아닙니다. 아무리 거친 손이라도 좋은 일을 하는 손은 거친 손이 아닙니다. 사실 겉모양도 좋지만 마음 관리를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잠언에 보면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4,23). “평온한 마음은 몸의 생명이고 질투는 뼈의 염증이다.”(마음이 편안 하면 몸에 생기가 돌고 마음이 타면 뼛속이 썩는다)(14,30)라고 적고 있습니다.

 

사무엘 상권16장에 보면 사무엘이 주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왕으로 성별한 사람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때 이사이의 아들 중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용모나 신장을 보지 마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마음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코린4장 5절에서도 주님께서 오시면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17장9절에서 10절에는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천길 물속이라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무서운 말씀입니다. 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마음이 똑바로 향해 있으면 행동 또한 바르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때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하고 질문 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7,6-7)하며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셨습니다.

 

당시 조상의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사온 음식, 시장에 다녀온 몸, 그리고 그릇들을 씻었습니다. 오늘날 생각하면 위생상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바리사이들에게는 밖에서 부정탈 수 있었던 것을 씻기 위한 정결례였습니다. 돼지고기 같은 부정한 음식에 손을 대거나 부정한 사람, 즉 나병환자를 만나면 부정을 탄다고 생각했고 이런 부정은 물로 씻으면 없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거룩한 신에게 잘 보이려면 그에 합당한 정결함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의 노여움을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성당에 들어올 때 성수를 찍어 기도합니다. 거룩한 하느님 대전에 들어서면서 온갖 악한 생각을 빼어 버리고 거룩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나갈 때는 거룩해 져 나가기 때문에 성수를 찍지 않습니다. 레위기나 민수기를 보면 피해야 할 금기사항, 부정을 탓을 때 회복하기위한 속죄 절차 등을 자세히 기록하게 되었습니다(레위기 민수기5장.9장.19장).

그런데 바빌론 유배라는 국가적 재앙을 겪고 자신들을 반성했습니다. 하느님과의 계약에 충실하지 못했던 부정,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지 못한 부정, 하느님의 거룩함을 더럽힌 부정을 저질러서 재앙을 겪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부정한 죄를 없애기 위해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레위20,7)는 율법의 요구에 따른 정결법은 점점 확산 되었습니다. 그런 추세를 주도한 사람이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알맹이는 빼 놓고 껍데기에 매달린 것입니다. 마음의 정화는 소홀히 하고 손을 씻고 그릇을 씻는 형식에 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정화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외적인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내면을 깨끗이 하라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근본 의미입니다.

 

사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차려 입고 멋지게 하느님 앞에 나왔지만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겉은 예쁘게 단장했지만 그 속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름답고 예쁜 모습은 고해성사를 통해서 마음의 정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모든 허물에 용서를 받고 주님의 거룩함을 입는 것입니다. 성무일도 시편에 보면 ‘겉꾸민 우리 위선 흉측하오니 당신의 은총으로 벗겨 주소서…..겹겹이 둘러싸인 어두움 속에 내 마음 거짓으로 가득 하오나 하느님 전능으로 다스리시면 내 마음 백옥같이 희어지리다.”하고 노래합니다. 허물로 누벼놓은 날들이지만 하느님의 권능과 주님의 자비가 있기에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얼짱’,‘몸짱’이라는 외면을 가꾸는데 온갖 노력을 다 쏟습니다. 그러나 정작‘마음짱’, 속을 가꾸는 일에는 소홀 합니다. 아니 방치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겉뿐만 아니라 속까지도 보는 분이시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하늘나라 천국문을 지키는 베드로 사도가 요즘 어려움을 겪으신 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가 가지고 있는 원본사진과 실물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랍니다. 젊은이들은 ‘너 방학했니? 너 방학 좀 해라!’ 한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방학동안 ‘고칠 것 뜯어 고쳐라’는 얘기랍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숨을 넣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하느님의 작품에 인간이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되겠습니다. 마음을 고치면 얼굴도 달라지는데 마음을 고치지 않고 얼굴만 고치니 우습잖아요?

정말 고쳐야 할 것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에 도금을 입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에 도금을 입히지 마십시오. 혹 도금이 되었거들랑 하루라도 빨리 벗겨내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대로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지를 분간 하도록 하십시오.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히브 12,14).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

 

예수님께서는 전통을 무시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인가에 마음을 두셨습니다. 사람들은 쇄신을 말합니다. 그러나 쇄신 이라고 다 옳지는 않습니다. 행해야 할 바른 쇄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근본 가르침, 다시 말하면 알맹이를 찾는 것입니다. 알맹이와 껍데기를 구별하는 지혜안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을 바라보기를 기대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분의 자비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월요일은 월래 웃는 날, 화요일은 화사하게, 수요일은 수수하게 그리고 목요일은 목을 숙여 웃고, 금요일은 금새 웃고 또 웃고, 토요일은 토실 토실 웃고, 주일(일요일)은 주님과 함께 (일을 만들어) 웃으시길 바랍니다. @@@

 

“비둘기가 콩밭으로 날아가는 것은 비둘기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기 때문이고, 원숭이가 나무위로 올라가는 것은 원숭이 마음이 나무위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 몸은 마음이 가 있는 곳으로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좋은 곳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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