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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1 화/ 기 프란치스코 신부 -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 머무는 삶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31 조회수924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22주 화 루카 4,31-37(15.9.1)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으십니까?”(루카 4,34)


 
The cure of a demoniac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 머무는 삶  

오늘날 우리는 촘촘한 그물망과도 같은 관계 속에 살아간다. 각자가 인간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나 사회생활을 하려면 관계를 떠나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관계를 맺으며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가? 인간은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상호의존하면서 우리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관계를 맺고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선교활동 중심지인 카파르나움에서 말씀만이 아니라 마귀를 내쫓는 행위를 통해서 권위를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성서와 조상들의 전통을 근거로 율법을 가르치고 추상적인 사변에 머물렀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마귀는 귀신들의 우두머리로서 옛 사람들은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로 보았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자가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하고 크게 외쳤다(4,34).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거라.”(4,35) 하고 꾸짖으시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마귀에 들린 이에게서 나갔다.

‘더러운 마귀의 영’은 하느님의 뜻 저 반대편에 있는 실재요 움직임이다. 마귀의 특징적인 태도는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이다. 마귀는 자신이 속한 더러운 사탄계에 계속 머물려고 하며 예수님의 개입과 간섭을 거부한다. 이렇듯 마귀의 움직임은 관계 단절이다. 관계를 맺으나 하느님의 선이나 자비와는 무관한 악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힘을 얻는다. 문제는 정작 하느님은 거부하면서도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사랑의 원천이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그분의 말씀의 진리에 따라 행동하고,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그곳이 하느님 나라이며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우리다운 태도가 아니겠는가!

나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할 때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있음을 의식하는가? 그저 생각 없이 말하고 움직임으로써 하느님의 사랑, 정의, 진리와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반드시 고의가 아니더라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도외시한 채 살아간다면 그런 나 자신이 ‘더러운 마귀의 영’에 들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과의 단절, 그분의 말씀과 무관한 삶은 결국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써 빛이 아닌 어둠을, 생명이 아닌 죽음을 참 기쁨이 아닌 비참함을 가져다 줄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거부한 채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병리적 현상에 개입하심으로써 사랑의 권위를 드러내신 것이다.

우리도 하느님과의 성사적 관계 안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행동방식을 따라가자. 그분과의 관계 깊숙이 들어가 그 안에서 삶의 축제를 벌이도록 하자! 나아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더러운 마귀의 영들’인 거짓과 인권유린, 사회적 차별과 온갖 불의,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우상화가 불러오는 부당한 경제체제와 구조적 가난에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개입하며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관계로 바꿔나가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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