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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02 조회수1,249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I must proclaim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because for this purpose I have been sent.
(Lk.4,43)
 
 
제1독서 콜로 1,1-8
복음 루카 4,38-44
 

지난 8월에 여행을 다녀온 뒤에 저는 미장원에 가서 파마를 했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 상태에서 좀 더 편안한 머리 손질을 찾던 중에 파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머리가 워낙 뻣뻣한 머리카락이라서 조금만 길면 지저분해져서 잘라야 하거든요. 또한 아침마다 지저분한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드라이기로 꾹꾹 눌러주는 것도 아픈 상태에서는 쉽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파마한다는 것이 너무나 쑥스러웠지요. 파마머리는 남자가 아닌 여자만의 전유물로 생각했고, 또 장시간 머리에 무엇인가를 싸매고 있는 모습의 당사자가 내가 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거든요. 그러나 안식년에 파마도 해 보자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파마를 해달라고 이야기를 해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파마를 하고나서 가장 좋은 것은 머리손질이 정말로 편해졌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드라이기로도 머리가 쭈뼛쭈뼛 서서 어쩔 수 없이 젤이나 왁스 같은 헤어 스타일링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드라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이제 모자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뻣뻣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저로써는 그전까지 모자는 쓸 수 없는 도구였습니다. 왜냐하면 쓰고서 벗을 때의 모습이 아주 이상히 변하게 하거든요. 모자에 눌린 곳은 절대로 다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지금 막 자고 일어나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자를 쓰고 벗은 뒤에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러주면 그만입니다.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전에는 잘 몰랐던 파마, 아니 오히려 피하려고만 했던 파마. 그런데 막상 하고 나니까 이렇게 편한 것을 왜 안 했을까 라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사실 우리 삶 안에서도 이렇게 어떠한 이유를 붙여서라도 피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해보지도 않고서 말이지요. 남들이 그렇다고 하더라, 그렇게 보기 좋아 보이지 않더라, 비슷한 것을 해보니 별 볼 일 없더라 등등의 말들을 내세우면서 하지도 않은 것들을 거절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먼저 해봐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습니다. 어쩌면 이 열병은 화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위가 있는데 집안은 신경 쓰지 않고 ‘예수’만을 쫓아다닌다고 하니 어떻게 화병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위도 보기 싫고, 특히 사위가 쫓아다니는 ‘예수’ 역시 보기 싫었을 것입니다. 만나봐야 뭐하냐면서 부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장모를 찾아와서 말씀을 나누시지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몸 안에 가득했던 열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밉기만 했었던 그들을 위해 시중을 들지요. 왜냐하면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가슴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옳다면 화낼 필요가 없고, 당신이 틀렸다면 화낼 자격이 없다(간디).


새로 한 저의 파마머리입니다. ㅋㅋㅋ

 

인터뷰를 보면서(‘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중에서, 박광수)

TV 어느 한 프로그램에서 수십만 마리의 닭을 키우며 양계 사업으로 성공한 이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전 이 사업을 위해 안 먹어 본 닭 사료가 없습니다.”

양계사업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그분의 열정은 인정하지만 인터뷰를 듣던 나는 웃음이 났다. 그리고 의문이 샘솟았다. 왜 닭 사료를 먹은 걸까? 자신의 입맛과 닭의 입맛이 같다고 생각한 걸까? 자신이 맛있다고 생각한 사료를 닭에게 주면 닭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물론 사료까지 먹은 그 열정이 그분이 양계 사업을 성공에 이르게 한 부분임을 인정하지만 나는 앞에 나열한 의문점 때문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고 그 의문은 뜻밖에도 우리의 아이들에게로 옮겨 갔다.

혹시 나는 내 입맛대로 아이들을 대하지는 않나? 내 입맛에 맞으니 아이들의 입맛에도 맞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가 내 그러한 모습을 보며 나처럼 웃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그러면서 양계장 주인이 병아들에게 모이를 주며 간절히 바랐던 처음 그 원초적인 바람만 아이들에게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이 아닌가 싶어서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누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지요? 나의 행동 자체를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입으로만 말하면서, 정작은 나만을 위해서만 행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시몬의 집터 위에 세워진 가파르나움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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