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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03 조회수1,262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Master, we have worked hard all night
and have caught nothing,
but at your command I will lower the nets.”
(Lk.5,5)
 
 
제1독서 콜로 1,9-14
복음 루카 5,1-11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신부님, 사제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일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그래도 독신으로 사는 것이 제일 힘들지요?”

사람들은 가정을 꾸리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제일 힘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신부는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해.’라는 기대치에 부응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만약 제가 어떤 스트레스를 받아서 힘들다는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곧바로 이런 질문이 날라 옵니다. “아니, 신부님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이 말은 곧, ‘신부님이 스트레스를 해결해 줘야지, 스스로 그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면 어떻게요?’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남들 앞에서는 힘들다는 이야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그저 웃으면서 마음속으로만 전전긍긍할 때가 많습니다.

바로 이런 다른 사람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면서 것이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의 기대치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하긴 이런 기대치에 대한 중압감으로 인해 엘리트, 전문직 종사자들이 더 우울증에 많이 걸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기대치를 무시하면서 사는 것이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치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통해서 성장이 이루질 수 있는 법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의 기대치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가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많은 고기를 잡은 뒤에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죄인인 자신이 주님의 이 놀라운 기적의 주인공이 될 만한 자격이 없다는 말이겠지요. 주님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기대치를 채워 줄 수 있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심으로써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의 기대치를 채울 수 없는 죄인이라고 스스로 고백했지만, 결국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릅니다. 할 수 없다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기대치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기대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할 수 없다면서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기대치를 따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이 주님을 제대로 따르게 할 것이며, 결국 영적인 커다란 성장을 가져올 것입니다.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크리스티안 바너드).


사제로 사는 길. 행복한 길입니다.

 

과정으로서의 행복

고전파 음악가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한창 작곡가로 잘 나가던 시절인 30세 이전에 시작된 난청이 심해져 나중에는 전혀 귀가 들리지 않게 되어 만년에는 많은 고통을 받았고 고독한 생활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아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시도할 정도 좌절에 빠졌었습니다. 하지만 자살하려던 그를 잡아 세운 것은 대작곡가로 명성을 얻겠다는 ‘목표로서의 행복’이 아니라 매일매일 음악을 작곡하며 느끼는 ‘과정으로서의 행복’이었습니다. 귀가 안 들리는 그 힘든 상황에서도 세상 사람을 감동시키는 음악을 작곡하는 하루하루의 과정 그 자체가 베토벤에게는 행복이었고 바로 그 ‘과정의 행복’이 삶을 놓지 않게 만든 힘이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따져 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들은 목표로서의 행복을 추구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표에 나아가는데 절대로 불가능한 이유를 만나게 되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과정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게 됩니다. 또한 항상 성실함을 가지고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렇다면 어떤 행복을 추구해야 할까요?


루트비히 판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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