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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05 조회수1,156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No one tears a piece
from a new cloak to patch an old one.
Otherwise, he will tear the new
and the piece from it will not match the old cloak.
(ㅣLk.5,36)
 
 
제1독서 콜로 1,15-20
복음 루카 5,33-39
 

지난 번 독일에서 차를 렌트해서 여행을 할 때의 일입니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옆 차선에 있었던 대형 트럭이 좌측 방향등을 켜고 들어오겠다는 표시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순간적으로 한국에서의 습관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트럭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앞차에 바짝 붙어 섰습니다. 솔직히 커다란 트럭이 제 앞에 있으면 시아가 가려서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트럭 운전사가 화가 났는데, 트럭의 경적을 크게 울립니다. 그제야 저는 ‘맞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독일이지.’하면서 양보하지 못한 저를 반성하게 되었지요. 양보한다는 것이 나에게 손해를 가져오고 남에게만 이득을 주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전철을 타면 곧바로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빈자리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빈자리를 발견하면 그곳을 향해 재빨리 이동합니다. 특히 꽤 먼 거리를 가야할 상황이면 이런 모습은 필수가 되지요. 빈자리가 없으면 도리 없이 서서 가야 하는데, 그럴 때면 왜 이렇게 다리가 아프고,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도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제 앞에 있는 분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얼른 그 자리에 앉았지요. 그런데 다음 역에서 한 할머니께서 타시는 것입니다. 얼른 일어나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한사코 거절하셨지만, “저는 조금만 더 가면 내리니까요. 불편해하지 마시고 그냥 앉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빈자리를 찾아 앉을 수가 없습니다. 저를 곧 내릴 사람으로 여겨야 할머니께서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으실 것 같으니까요. 빈자리를 찾지 않고 그냥 서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 참으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갈 때는 괜히 다리가 아프고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는데, 양보하고 난 뒤에는 다리도 아프지 않고 시간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양보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 같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 양보가 결국 내 자신에게 혜택을 주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왜 양보를 잘 못하는 것일까요? 눈앞에 놓여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자신에게 새로움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과거의 전통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움을 가지고 오신 주님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 것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들과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때 세상 너머에 있는 내게 정말로 커다란 혜택을 주는 것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새로움으로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행동이 반드시 행복을 안겨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행동 없는 행복이란 없다(윌리엄 제임스).


어제 고해성사를 봤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네요.

 

조삼모사(朝三暮四)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 사자성어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지요. 원숭이를 키우고 있었던 한 노인이 있었는데, 집안 살림이 어려워져 키우던 원숭이들의 먹이를 줄여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들에게 아침에는 밤 세 톨을 주고 저녁에는 밤 네 톨을 주겠다고 말했지요. 이에 원숭이들은 길길이 뛰면서 성을 내었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노인은 말을 바꿔서 이렇게 말하지요.

“그럼 아침에는 밤 네 톨을 주고, 저녁에는 밤 세 톨을 주겠다.”

이 말에 원숭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자성어는 어리석은 사람을 지적하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런데 어떤 심리학자가 이 사자성어에 등장하는 원숭이들은 심리학적으로는 너무나도 지혜롭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즉, 원숭이들은 아침에 미리 네 톨의 밤을 확보함으로써 우선 불안감을 줄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줄일 수가 있다고 하네요.

어때요?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생각해보니 정말로 지혜로운 원숭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든 결론을 내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의 주제가 어리석음인 줄 알았는데, 정반대의 지혜로움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의 폭을 넓혔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까요?


고통속의 예수님. 편한 것만 추구하려는 우리 모습을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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