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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엇이 중요한지(희망신부님의 글.)
작성자김은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10 조회수752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무엇이 중요한지(루카6,20-26. 09.09.)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오늘 아침에 밥이 없어서 굶고 나오신 분 있으시면 손 들어보십시오. 여러분들은 불행합니다. 굶주린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였는데 여러분들은 굶주리지 않았으니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맞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였는데 옛날에 비해서 지금은 절대적인 빈곤은 드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받아들일 때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대에는 전쟁이 빈번했기 때문에 과부, 고아 등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바오로 사도가 잘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저 위의 것을 추구하며 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본당에서는 선교운동을 하며 단식기도와 고리기도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선교를 위해서 기꺼이 단식해야지. 고리기도도 내 차례가 오면 기꺼이 해야지.’하면서 예수님께 자기 자신을 봉헌하면서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기준이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을 향해 있는가. 그리고 그분의 뜻을 이루려고 살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가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슬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는 사람으로서 가급적이면 남에게 더 기쁨을 주고 평화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남으로 하여금 나를 욕하게 만들고 비웃게 만든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성서 구절을 읽을 때 문자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하느님의 지혜로, 성령의 지혜로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눈이 죄 짓게 하면 눈을 뽑아 버려라.’ 하셨는데, 여러분 중에 눈으로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눈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무리하게 해서 스스로가 고통스러워진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한 자매님이 방송에 나온 멕시코의 한 빈민가에 가서 봉사하고 싶다고 하여 저에게 문의전화를 하셨습니다. 지금은 마음이 충만하여 그 생각으로 가득 찰 수 있으나, 악 또한 선한 충동을 일으켜서 사람들을 유혹할 수도 있으니 더 기도해보고 천천히 접근하되 일 년, 이 년이 지나도 그 생각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것은 하느님이 부르심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선한 충동 자체도 유혹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한 충동에 현혹이 되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에 매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인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매우 열심히 하시는 어떤 분과 며칠 같이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분을 지배하고 있는 영은 공포와 두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이 시키는 대로 부부생활도 안하고 지내는데 본인은 그것을 거룩함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전혀 하느님의 거룩함이 아니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공포와 두려움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공포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읽을 때 그 부분만 계속 눈에 들어옵니다. 두려워서 하느님을 섬긴다면 그것은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공포의 영입니다. 거기에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바오로사도는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분의 사랑 안에 온전히 접어들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주님의 재림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미 주님의 재림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마지막 종말이 있지만 그것은 모든 것들이 다 그리스도께 복종한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굶주린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일, 우리 공동체에서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얼마나 굶주리고 그 일에 동참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가! 또한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일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공동체가 어떤 일에 전념하던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사 중에 진정으로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이 되기를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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