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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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매일미사묵상]"위선의 위험-Santa Marta 미사" (2015년 9월11일 금요일 )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15 조회수816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Santa Marta 매일미사 묵상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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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5년 9월 11일 금요일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제1독서: 티모테오 1서 1,1-2.12-14

화답송 : 시편 16(15),1-2ㄱ과 5.7-8.11(◎ 5ㄱ 참조) 복음: 루카 복음 6,39-42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6810&gomonth=2015-09-11&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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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Marta 미사 – 위선의 위험

http://www.news.va/en/news/mass-at-santa-marta-the-risk-of-hypocrisy

 

2015-09-11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만약 다른 사람의 험담을 결코,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을 당신이 발견한다면 그는 바로 성인품에 오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른 사람들에게 늘 위선적인 손가락질을 하고 싶어하는  유혹을 경고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 대신 우리 자신의 잘못과 약함을 인정하고 내 탓을 함으로써 “첫걸음을 내딛을 용기”를 갖도록 권고했습니다. 이는 용서와 자비에 초점을 맞춘 영적인 조언으로 이는 9월 11일 금요일 아침, Santa Marta 미사에서 교황이 전했습니다. 그는 훈계하기를, 왜냐하면 “위선”의 위험을 “교황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강론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즈음 전례의 말씀은 우리에게 평화에 대해,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평화를 이루시고 화해시키신 업적에 대해 여러 차례 묵상하도록 해 왔습니다. 또한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하는 우리의 의무에 대해서도 묵상하게 해 왔습니다.” 즉, “평화를 이루기 위해, 화해를 이루기 위해.” 교황이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말씀 전례는 또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길, 특히 예수님께서 실천하신 두 가지 말에 대해 묵상하게 합니다. 용서와 자비.” 교황은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이 계속 말하기를 “요즈음 말씀의 전례가 우리에게 이것을 생각하게 이끌어 왔습니다. 자비와 용서의 이 길,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마음을 지닌 그리스도인 마음의 길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왔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방법은 “서로 참아 주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과 용서와 인내에 이르는” 마음가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방법은 인내입니다. 그것은 위대합니다.”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위대한 정신과 함께 또 다른 것들관대함, 용서하는 너그러움, 자비의 너그러움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이와 같이 되라고, 너그러워지라고 격려하십니다. 마음에서 우러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라고, 무엇보다 사랑을 주라고 격려하십니다. 교황이 덧붙이기를 이 점에 있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확고히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주님께서 요약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무엇을 받겠습니까?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교황은 말합니다.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즉, “네가 많은 사랑과 자비와 너그러움을 갖고 있다면 네가 그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요즈음 말씀 전례의 생각들을 요약한 것입니다.”라고, 교황은 지적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아름다운 일이예요, 그렇죠! 하지만 교황님, 그건 아름답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해요? 그런 일이 어떻게 시작될까요? 그 길을 걷기 위한 첫걸음은 어떤 것입니까?” 

 

교황은 전례의 말씀 그 자체를 생각하면서 그것에 대해 답했습니다. 우리는 이 “첫걸음을 제1독서와 복음 안에서 봅니다.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그 첫 걸음은 내 탓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탓을 하기 전에 내 탓을 하는 용기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보내는 첫 번째 서한(1:1-2, 12-14)에서 “그를 택하신 것에 대해 주님을 찬미합니다. 그리고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것은 자비였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자신이 모독한 자였고 모독한 사람은 돌에 맞아 죽는 심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했고 모독했습니다. 그는 영혼에 평화가 없었던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바오로 사도는 자기 자신을 탓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루카 복음의 구절(6:39-42)에서 “주님께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의 비유로 같은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형제여,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첫 걸음”은 “내 탓하기”입니다.

 

이와 같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한 한가지 양심 성찰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할 때”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봐봐, 이 사람은 이래, 저 사람은 저런 식이고, 저 사람은 이렇게 하고 그리고 이 사람은……”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러면 너는 어때, 너는 무엇을 하니? 나는 무엇을 하나? 나는 정당한가? 나는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티를 빼낼 재판관같을까?”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위선자”라는 말을 고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설명하기를 이 말은 예수님께서 두 얼굴을 가진 자들, 두 영혼을 가진 자들에게만 쓰십니다. ‘위선자!’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남성과 여성. 모든 사람들, 그렇지요! 모든 사람들! 교황을 비롯해서 모두, 모든 사람!” 교황이 계속 말하기를, 사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이 자기 탓을 할 줄 모른다면” 그리고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의 문제들을 배려하면서 적합한 사람과 이야기할 줄 모른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는 이 아름다운 일,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일, 자비와 용서의 이 길,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자비의 이 아름다운 일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교황은 확고히 말했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이 첫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면 회심의 은총을 주님께 간청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하여 그 첫 걸음은 이러합니다. 나는 내 탓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기본적으로 그 대답은 “간단하고 그것은 단순한 연습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실용적인 충고를 해 줍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생각하게 될 때, 멈추십시오.” 그리고 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망을 느낄 때, 멈추십시오” 그리고 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또한 그것이 티모테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라고 쓴 “바오로 사도의 용기”입니다. 그러나 교황이 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많을 것들을 말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적을 하지 말고 우리 자신에 대한 지적을 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너그러움의 길에서 첫걸음을 내딛는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티만 볼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옹졸해 집니다. 사소한 것들로 가득 찬, 헛된 것들로 가득 찬, 옹졸한 영혼.”

 

성찬 전례를 계속하기 전에 교황은 “주님께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은총 ― 이것은 또한 사도 바오로의 용기이기도 합니다―을” 간구했습니다. 용서하는 너그러움, 자비한 너그러움.” 교황은 “어떤 사람을 모든 과정에서 기적임에 틀림없는 성인으로 인식하기 위해 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선포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남의 험담을 결코,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그는 곧바로 성인품에 오를 것입니다. 그건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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