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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부해야 할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 / 복음의 기쁨 5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15 조회수802 추천수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배척의 경제를 거부해야 한다. 물론 불평등의 경제도 안 될게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적자생존(適者生存)’ 등의 경제논리로만 따진다면

이러한 거부나 못마땅함은 당치도 않는 소리다.

1등만 살아남는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배척과 불평등은 어쩜 필수 코스일 게다.

이같이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게 지당한 경제논리이기에 말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라는 계명이

인간 생명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분명한 한계를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하게 주장해야만 한다.

이 같은 경제는 사람들만 죽일 뿐이다.

이런 모순된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이상한 사회’에 살아도 이걸 의당 당연시 한다.

 

어떻게 길에서 얼어 죽은 나이 든 노숙자의 안타까움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으면서,

주식시장에서 대기업 관련 주가 몇 포인트 하락한 것은 뉴스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배제’라는 배척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 한쪽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다 끝내는 목숨을 저버리는 마당에,

다른 한편에서는 비싼 음식이 버려지는 걸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고만 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이런 유형은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진다.

모든 게 경쟁과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경제 논리에만 따르면서

힘센 이가 힘없는 이를 희생시켜가며 살아간다.

그 결과로 수많은 이가 배척되고 불평등 속에 소외되고 있다.

그들에게는 마땅한 일자가 주어지지 않으면서, 또한 적절한 노동의 대가도 받지도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면서, 현실을 박차고 일어설 기회도 갖질 못한다.

 

이는 인간을 사용하다가 그냥 아무데나 막 버려도 되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결과이다.

우리는 이제껏 ‘버리는 문화’만을 만들어 왔고 지금도 그게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착취와 억압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어떤 도전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배척은 우리가 사는 터전에서 인간답게 살도록 보호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이는 버려진 수많은 이가 무관심속에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배척과 불평등으로 배제된 이들은 궁극적으로 우리와 함께해야 할 이다.

 

그리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공동 노력의 위기 속에서’라는 내용에서

이 배척과 불평등을 우선으로 다루시면서, 경제논리에만 치중한 부의 집중을 다루셨다.

교황님의 염려대로 이렇게 배제된 이들은

사회의 하층민이나 그 변두리에서 공민권을 빼앗긴 힘없는 이들이기에,

그들은 더는 사회의 한 부분으로도 간주되지도 않는다.

그렇게 배제된 이들은 착취된 게 아닌, 쫓겨난 ‘버려진’ 이다. 쓰다 남은 배제된 이나 다름이 없다.

이는 다변화된 부의 집중인 물질 만능에서 비롯된 배척의 결과이리라.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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