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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버려진 이를 외면만하는 우리를 / 복음의 기쁨 54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17 조회수649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외길 근로자 아닌 노동자로 평생을 별보기로 일한 성실한 이가

온갖 국가복지에서 외면당하는 뉴스는 뒷전이고, 대기업 재벌 3세의 연예 행각이 큰 뉴스가 된다.

이건 ‘배제’라는 배척의 사례이다.

또 한쪽에는 가난에 끝내는 목숨을 저버리는 마당에, 비싼 외제차 수입은 곳곳에서 한창이다.

사회적 ‘불평등’의 극치이다.

살벌한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로, 가진 이가 힘없는 약자를 희생시키는 꼴이다.

 

이러한 불평등으로 많은 이가 배척되고 소외되어 적절한 노동의 대가는커녕 가진 자에게 당하기만 한다.

해서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산다.

이는 하도급 형태로 이용하고서는 그냥 막 버려도 되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갑질의 산물이다.

우리는 이제껏 ‘버려지는 문화’에 젖어왔고 그 잔재의 일부가 여전히 당연시 되고 있다.

이런 배척은 우리의 삶에서 ‘인간답게 살도록 보호’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성장과 분배를 위해 재정 지출을 확대해

성장이 저소득층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현상을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落水效果)라 한다.

일종의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富)를 늘리면 궁극적으로 그 혜택이 중소기업,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거다.

정의가 실현된 국가에서는 이 정책이 적정 성장과 분배를 이루어

저소득층에게 돌아가는 효과가 극대화 될 게다.

그렇지만 이는 국부(國富)의 증대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정당한 분배보다는 성장, 형평성보다는 효율성만 우선을 둔 주장이리라.

 

이런 맥락에서 어떤 이들은 자유 시장으로 이루어진 경제성장이

세상에 더 큰 정의와 평등을 가져올 것이라 여겨 이 낙수이론을 계속해서 옹호한다.

이런 주장은 사실로 입증된 적이 결코 없다.

오히려 경제 권력으로 무장한 이들의 선심,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신성시하는 방식들을 무턱대고 순진하게 믿도록 유도하기에 급급하다.

 

그 사이 배제된 이들은 여전히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다.

다른 이들을 배제하는 삶을 유지하는 것과 더불어

이기적 이상에만 몰두하는 게 바로 무관심의 세계화를 발전시키는 요인일 게다.

이를 알게 모르게 깨닫지 못하는 사이,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아무런 동정심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다른 이의 고통에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우리가 되었다.

이는 마치 이게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책임이라고 여긴 탓이다.

 

잘 먹고 잘살자는 번영의 문화가 우리를 죽이는 것 같다.

우리는 시장에 새로운 게 나오면 사고 싶어 안달을 한다.

반면에 아무런 기회도 갖지 못해 망연자실한 이들을 가슴에 새기지도 않고, 단순한 구경거리로만 여긴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ㄷ)’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지만

양쪽 다 추구하는 바리사이로 전락한 우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런 우리를 엄하게 나무라신다.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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