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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18 조회수902 추천수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Your faith has saved you;
go in peace."
(Lk.7,50)
 
 
제1독서 1티모 4,12-16
복음 루카 7,36-50
 

어느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서로들 자신의 나이와 함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특기나 장점을 말하는 자리였습니다. 다들 평범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자신이 잘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잘 웃어요.”

그러면서 한 번 씩~~ 웃습니다. 이 모습에 서먹서먹한 만남이었던 자리가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웃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쉬운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이 세상 안에는 웃음을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의 웃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우리들은 그 행복을 전하는 일에 너무나도 인색해져 있습니다.

아무튼 이분의 소개를 들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특기와 장점은 참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특기, 장점들은 정말로 많을 수 있습니다. 이분이 소개한 웃음도 있겠지만,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화내지 않는 것,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 남의 험담 하지 않기 등등.... 그렇게 쉽다고만 말할 수는 없지만 또 어렵다고 포기할 것도 아닌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것들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뿐 아니라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소중한 일들이라는 것이지요.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직무유기의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살라고 이 땅에 우리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오늘 죄인인 여인이 예수님 발에 울면서 향유를 발라 드립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었던 바리사이 시몬은 죄인을 받아들이시는 예수님을 못마땅해 하지요. 예수님이 예언자라면 분명 저 여인이 어떤 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것이고, 따라서 여인이 지금 하고 있는 향유를 발라 드리는 행위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직접 초대했지만 부정적인 생각만을 품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큰 사랑을 보이려고 노력했던 여인이야말로 죄를 용서받았음을 분명히 이야기하십니다. 여인은 자신의 죄에 대한 깊은 뉘우침의 표시로 예수님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바리사이 시몬은 스스로 올바르다는 생각뿐 정작 초대했던 예수님을 위해 한 행동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행동하는 여인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우리도 해야 할 것들이 이 세상에 참으로 많음을 깨닫습니다. 단순히 나를 위한 삶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행동들을 할 때, 우리 역시 주님께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은 용서의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기운을 북돋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마크 트웨인).


예수님 발에 향유를 바르는 여인.

 

나를 일깨운 믿음(박광수,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중에서)

어린 시절 나는 집 안 물건을 훔쳐 내다 파는 못된 도벽이 있었다. 사 형제 중 막내였던 나의 범죄는 대부분 발각되었다. 매번 부모님과 형들에게 혼났지만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시작하여 고등학교 1학년 여름까지 내 도벽은 이어졌으나, 다행히 그해 여름 어떤 일을 계기로 씻은 듯 고쳤다.

당시 우리 가족은 2층 주택에 살았다. 무던히 덥던 어느 날, 2층 방에서 잠깐 잠들었다 깬 나는 1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둘째 형과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다툼의 이유는 나였다. 형이 애지중지하던 카메라가 사라졌는데 어머니는 범인이 나라고 단정했다. 어머니의 직감대로 나는 일주일 전쯤 형의 카메라를 청계천 장물아비한테 팔아 버린 터였다.

놀라운 건 형의 반응이었다. 형은 어머니를 나무라고 있었다.

“물건만 없어지면 다그치니까 막내가 더 삐뚤어지는 거예요. 저도 더 찾아볼테니 확인되기까지는 일단 믿어 주자고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차마 1층으로 가지 못하고 다락방에서 다음 날까지 숨어 있었다. 거기서 나는 혼자 울었다. 날 믿어 준 형에 대한 미안함과 반성의 눈물이었을 거다. 이튿날 형의 카메라를 팔았다고 어머니에게 고백했는지, 그런 적 없다고 딱 잡아뗐는지는 기억이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그날 이후 내 도벽을 고쳤단 것이다. 누군가가 날 믿어 주려 하는데 그 믿음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이유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믿어준다는 것을 떠올려 봅니다. 그 믿음을 배반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것인지를 말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믿어주고 계심을 발견합니다. 그토록 많은 죄를, 또한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고 있는 나에게 또 다시 기회를 주시지요. 바로 우리가 당신의 뜻에 맞게 살 수 있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어줌을 내 마음 안에 굳게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 믿어줌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도 웃는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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