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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21 월/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거룩한 파격을 사는 오늘의 복음사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20 조회수938 추천수7 반대(0) 신고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월 마태 9,9-13(15.9.21)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태 9,9)


 
The call of matthew





 거룩한 파격을 사는 오늘의 복음사가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지요. 취향과 관심사, 재물과 권력, 성장 배경과 학벌 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게 마련인 삶의 모습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에 줄을 서느냐에 신경을 쓰고 연(緣)을 중시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거기에는 늘 각자의 이해관계와 미래에 대한 안전장치를 추구하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차별과 소외가 생겨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우리네 삶의 가치기준과는 전혀 다르지요.

오늘은 ‘복음사가’ 마태오보다 ‘복음의 사람’이 되어간 세리 마태오에 주목해봅니다. 카파르나움에서 태어난 ‘알패오의 아들 레위’(마르 2,14) 마태오는 세리로서 당시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동족들에게 세금을 수탈하여 로마 총독에게 바치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들을 죄인으로 낙인찍어 경멸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죄인인 세리와 관계를 맺는 것은 종교적인 금기였기에 종교생활에서 소외된 그들은 회개할 기회조차 갖기 어려웠습니다(루카 19,9-10).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써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주셨을 뿐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로마 5,8).

예수님께서 ‘공적 죄인’인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물론 제자들에게까지도 충격적인 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마태오는 세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 하시자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마태 9,9) ‘나를 따라라’ 하는 말씀은 제자단이나 권력에 복종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비심에 가득찬 영의 눈으로 소외된 그를 바라보시고 내면의 변화에로 이끄신 것입니다. 이렇게 그의 부르심은 직무보다는 복음이 되라는 근원적인 변화에로의 초대인 셈입니다.

바리사이들의 눈에는 경건하신 예수님께서 상것들을 받아들이시고 그들과 어울리신 처사는 수치스런 일이었습니다(바빌론 탈무드,브라콧 43b). 그러니 마태오를 부르신 것은 인간의 좁디좁은 잣대를 뛰어넘는 ‘거룩한 파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파격적인 처신을 보고 그들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11,19)라고 비아냥대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파격적인 행동방식이 우리가 극복하고 살아내야 하는 복음의 길이요, 행복의 길임을 알아채야 하겠지요.

폐쇄적인 잣대로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구분하여 차별하며 자기 기준과 취향에 맞는 이들끼리만 어울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온갖 피조물, 무생물과 광물, 심지어 죽음까지도 동등한 형제 자매로 받아들였던 성 프란치스코의 울타리 없는 사랑이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의 부르심은 죄인인 세리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습니다. 부르심에 따라 나서는 마태오의 태도 또한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9,9). 엄청난 재물을 지녔고 재물에 따르는 권세를 누렸으며, 온갖 비난을 무시할 정도의 강한 자아를 지닌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루카 5,28)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될 수 없었겠지요. 그럼에도 ‘서슴없이’ 따라 나선 그는 의인인양 살면서도 순간의 부르심을 알아차리지도 기꺼이 응답하지도 못하는 우리를 향한 강력한 채찍으로 다가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지만, 죄를 짓고도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의인이라 여기며 잠든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는 인식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데 남의 죄보다는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보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아파하며 자비를 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마태오는 사도 바오로처럼 ‘죄인 가운데서 첫째가는 죄인’(1티모 1,15)라는 정직한 의식을 지녔기에 회개하였고 주님의 사랑 안에 일치되었던 것이겠지요.

죄지은 형제자매들을 단죄하고 잘못을 비난하면서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부르시며 보여주신 한없는 자비심과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주시는 그 '거룩한 파격'을 살아내야겠습니다. 한편 죄인 취급을 받았음에도 부르시자 곧바로 “일어나 따랐던” 마태오의 회개를 향한 자발성과 명확한 자기인식을 배웠으면 합니다. 복음이 되어 복음을 썼던 또다른 복음사가로 사는 하루이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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