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씀의초대 2015년 9월 22일 [(녹)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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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5-09-22 | 조회수72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9월 22일 [(녹)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말씀의초대 에즈라기는 바빌론에 유배 간 이스라엘이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유배에서 해방되어 귀향한 뒤의 역사를 전해 준다. 페르시아 임금은 유배 간 이들을 돌려보내면서 그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도록 허락한다.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은 기원전 515년에 성전을 재건하고 봉헌식을 올린다(제1독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 당신의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제1독서◎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완공하고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유다인들의 지방관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 하느님의 집을 제자리에 다시 짓게 하여라. 그대들이 유다인들의 원로들을 도와서 해야 할 일에 관하여, 내가 이렇게 명령을 내린다. 왕실 재산 곧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서 받는 조공에서, 지체하지 말고 그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비용을 내어 주어라. 내리니 어김없이 시행하여라.” 예언자와 이또의 아들 즈카르야가 선포하는 예언에 힘입어 건축 공사를 '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와 다리우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명령에 따라 건축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15 그리하여 이 집이 완공된 것은 다리우스 임금의 통치 제육년 아다르 달 초사흗날이었다. 곧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집 봉헌식을 올렸다. 17 이 하느님의 집 봉헌식에는 황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양 사백 마리를 바치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 이스라엘의 지파 수에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 사제들을 저마다 번별로 세우고 레위인들을 저마다 조별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열나흗날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20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일제히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정결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돌아온 모든 유배자와 동료 사제들과 자기들이 먹을 파스카 제물을 잡았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22(121),1-2.3-4ㄱㄴ.4ㄷㄹ-5(◎ 1 참조)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복음환호송◎ 루카 11,28 참조
◎복음◎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얼핏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 가족들을 멀리하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은 이가 의아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초점은 예수님께서 어머니와 형제들을 멀리하셨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을 새로운 가족으로, 형제로 삼으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살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사제가 가족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당 사목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신자들보다 가족에게 관심을 더 기울인다면 신자들에 대한 보편적 사랑에 장애가 되겠지요. 본인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신자들은 바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족이 아닌 일반 신자라 하더라도 특정한 사람들하고만 특별히 만나거나 환대하다 보면 다른 신자들이 불편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작은 가족 대신 한없이 큰 가족을 품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구원하신 이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히브 2,11) 그들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께 제자를 맡겨 드리면서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하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외아들을 잃는 그 자리에서 모든 제자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이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마르 10,30) 를 백 배나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핏줄로 맺어진 혈연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영적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지요. 더 큰 사랑을 위해서, 모든 이를 향한 보편적 사랑을 위해서, 더 많은 이를 형제로 맞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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