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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짓 없는 진리만이 /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24 조회수679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지은 죄를 되돌아보며 뉘우치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 데 있다.

성찰과 정화의 시간이 없이 거듭되는 죄는 양심을 무뎌지게 한다.

문제는 지도자가 마지막 보루인 그 양심마저 내몰라하면

마침내 바다 한가운데에서 좌표를 잃은 배처럼 모두가 제 모습을 잃고 표류할 게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리라.

문득 이전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마주할 수밖에.

 

인디언들의 벽화나 상형 문자는 아이들 마음은 세모,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로 표현한단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픈 건

죄 지을 때마다 세모꼴 양심이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서리가 마음을 긁기 때문이라나.

허나 한두 번 범하면서 모서리는 점점 닳아 동그랗게 변한다.

결국 어른이 되면 죄도 별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게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루카 9,9)’

우리도 이렇게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지은 죄 때문일 게다.

진리와 정의를 저버렸을 때 오는 양심의 소리가 불안이리라.

그는 회개하라는 세례자 요한의 충고를 무시하고 불의를 저질렀다.

따라서 아무리 권력자라도 지은 불안이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공생활 내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많은 이가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에 탄복했단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혼란을 겪기도 했으리라.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많은 이가 하느님을 더욱 찬양했단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여기고 죽일 궁리까지 했으리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에게 디딤돌이 되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었으리라.

 

그러면 헤로데에게는 예수님의 출현은 어떠했을까?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제2의 요한 세례자’일 뿐이다.

눈엣가시였던, 자신의 불의와 불순을 드러내 알렸던,

자신의 치부를 폭로했던 걸림돌 중의 걸림돌인 요한이었으리라.

요한의 정의 앞에서 헤로데가 자유롭지 못했던 것처럼,

그는 이제 예수님의 출현으로 다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을 게다.

헤로데는 요한이 바른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죽일 때에도 몹시 괴로워하면서 마지못해 목을 베었다.

죽이고 나서도 헤로데는 요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여,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그가 되살아난 것이 아닌가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리라.

 

헤로데의 모습과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한 세례자 요한,

빌라도의 처신과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을 비교해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진리가 무엇인지 물으면서도

진리를 대면하기가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그들은 도저히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게다.

오히려 자유로웠던 것은 세례자 요한이었고 예수님이셨으리라.

 

이제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묻자.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걸림돌일까, 디딤돌일까?

‘아멘’하면서 받아 모시는 성체가 우리에게는 걸림돌일까, 디딤돌일까?

지금 읽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걸림돌이 될까, 디딤돌이 될까?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걸림돌로 받아들이는 삶이 때때로 존재하는 까닭은

바로 우리의 잘못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삶을 한층 더 새롭게 해 주시는 디딤돌이 되시기를 바라실 게다.

 

언제부터인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단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려는 변명에 불과할 따름이다.

종교도, 정치도 백성이 없이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모두가 백성을 위한 행위이고, 그 백성이 참여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종교요 정치일 게다.

가끔 위정자는 그러한 진실을 왜곡하거나 피하려 든다.

그건 이전 일이라면서 자신과는 무관하다나. 이에 우리는 누구를 따라야만 할까?

 

가끔 진실을 왜곡하거나 피하려 드는 지도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되레 안타깝다.

믿음의 생활을 하는 이는 이런 양심에 반하는 일에 분노해야 할 게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진리와 정의의 말씀에 언제나 함께 하기에

지도자가 거짓 없는 진리의 바른 길로만 가도록 기도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운명을 주관하시는 그분도 언제든 어디에서든 그들과 함께 해 주실 것이니까.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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