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9.25 금/ 삶으로 고백하는 나의 정체성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24 조회수1,040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25주 금 루카 9,18-22(15.9.25)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20)



Peter's confession about Jesus




 삶으로 고백하는 나의 정체성  

가끔 내가 누구인지 잊고 살고 있음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습니다. 할 일이 많아 늘 바쁘고 주어진 직무와 다른 이들의 요구에 응하며 살다보면 내가 누구인지 잊은 채 움직이기만 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내가 따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뚜렷이 인식하지 않는다면 얼빠진 삶이 될 것입니다.

지금껏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의문을 던져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많은 여인에게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하시자 사람들은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습니다(7,48-49). 또 그분이 풍랑을 가라앉히시자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시고 또 그것들이 이분께 복종하는가?” 하며 놀랐기도 했습니다(8,25).

이제는 거꾸로 예수님께서 그동안 갈릴래아에서 하신 활동의 결과를 알아보려고 당신의 신원에 관해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앞으로 성취되어야 할 일에 대한 기초를 놓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헤로데의 궁전에까지 퍼졌던, 예수님에 관한 군중의 생각을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메시아가 아닌 예언자 곧, 세례자 요한, 엘리야, 다시 살아난 옛 예언자 등으로 제각기 달리 인식하였습니다(9,19). 정치적 해방과 현세적 구원을 바랐던 그들에게 이런 이해 부족은 너무나 당연했는지도 모릅니다.

한편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9,20)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분은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9,21)고 분부하십니다. 함구령을 내리신 까닭은 군중들뿐 아니라 사도들 역시 하느님의 아들이 부활의 영광에 도달하기에 앞서 고통 받고 죽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고 이르셨습니다(9,22).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임무로 받아들여 ‘걸어야 할 길’로 이해하셨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병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시다가 배척당하고 죽음에 처해지시자만 되살아나실 것입니다.

군중과 베드로의 예수님 이해는 이렇듯 서로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예언자로만 바라보고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눈을 가리고 마음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편견과 고정된 신념이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이미 선택받은 민족, 태생 구원의 대상으로 여겼기에 예수님의 치유와 해방을 위한 처사들은 ‘좀 괜찮아 보이고 때로는 놀라움도 주는 예언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있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고 고백하느냐 하는 문제는 신앙의 본질에 해당하는 중요한 점입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내 삶과 밀착되고 녹아들어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군중들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됩니다.

삶의 자리에서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 기울어진 생각이나 닫힌 마음을 열어 주님의 영을 호흡하고 그 영으로 새롭게 보고 하느님의 손길을 맞아들일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평소에 무심코 넘겼던 평범한 일들이나 무심코 지나쳐버리던 사람들과의 만남이 놀라운 창조의 순간으로 바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께서는 그저 낭만적인 기쁨이나 감상적인 행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수난을 겪어내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내어주신 메시아이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길이 우리의 길임을 알아차릴 때 군중과는 다른 우리의 정체성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제자다운 얼을 지니고 움직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