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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25 조회수918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9월 25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Who do you say that I am?
(Lk.9,20)
 
 
제1독서 하까이 1,15ㄴ─2,9
복음 루카 9,18-22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꿈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들더니 말합니다.

“재벌2세가 꿈입니다. 그런데 아빠가 노력을 안 해요.”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기가 막혔지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 아이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전해주었지요. 그러자 이 아버지 역시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나도 재벌 아빠가 꿈인데, 아이가 노력을 안 해요.”

사실 옛날 우리나라는 너무 가난해서 교육의 기회를 갖기가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 자신은 배우지 못했어도 자식들을 교육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교육 받은 자녀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했고, 실제로 가난에서 벗어나 보다 더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요즘 시대에는 워낙 자녀를 조금 낳다보니 모두가 다 고등교육까지 받게 되지요. 또한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부모보다 더 잘 살 것이라는 확신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무능함을 부모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부모가 왜 부자가 아니어서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지요.

자녀는 부모 탓, 부모는 자녀 탓으로 돌리는 시대가 아닐까요? 그러다보니 서로에 대해 감사하기는커녕 불신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 탓으로 돌리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보다는 내 자신을 바라보고, 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대뜸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옛 예언자 중 한 분이라는 소문을 이야기하시지요. 이 소문이 맞는지 틀리는지 이야기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소문이 완전히 틀린 것임을 간접적으로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목하신 ‘너희’라는 단어에 오랫동안 머물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문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대꾸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곧 세상의 견해에 휩쓸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하시면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함을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정답을 말한 베드로, 아마 모든 제자 역시 ‘하느님의 그리스도’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말씀해주시지요. 즉,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우리 역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우리, 거짓 없는 참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우리,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자신 있게 전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나라의 신비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가치는 일의 크기가 아니라 생각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콜린 파월).


세상은 함께 걷는 길입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허리가 몹시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자기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지요. 그런데 진료실에 나온 할머니가 허리를 쫙 핀 채 지팡이를 짚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할머니에게 의사가 어떤 치료를 해주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별 다른 치료 해준 것은 아니고. 글쎄 전의 지팡이보다 긴 지팡이를 주더라고.”

문제는 짧은 지팡이에 있었던 것입니다. 지팡이가 짧아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 삶 안에서도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의 전환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더욱 더 많아질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라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의 것에 대한 욕심과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따르라는 생각의 전환을 하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용감하게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을 통해 생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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