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9.26 토/ 내 인생의 행복 터널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25 조회수1,042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25주 토 루카 9,43ㄴ-45(15.9.26)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루카 9,44)



The second prediction of the passion





 내 인생의 행복 터널

자본의 힘이 점점 막강한 위력을 떨치게 되면서 사람들은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확보하기 위해서, 또는 자본을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 힘을 씁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물질의 풍요 속에서 온갖 편의주의와 쾌락주의가 일상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성생활에서도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단시간에 기도의 경지에 이르려고 하며, 일시적인 기부나 봉사로 하느님과의 일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땀 흘리고 공을 들이지 않고 고귀한 것, 거룩한 것을 얻겠다는 발생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수난 예고와 거룩한 변모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들이 당신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준비하도록 또다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모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하신 온갖 일에 탄복하고 있었습니다(9,43). 이로써 예수님의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과의 뚜렷한 구별이 다시 한 번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이 탄복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9,44)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수난 예고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에 관해 묻기조차 두려워합니다(9,45). 이는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고난을 겪으셔야 한다는 사실은 제자들조차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신비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동행하면서 보고 체험한 그분은 결코 실패하거나 고통을 받으실 분이 아니었으며 더구나 수치스런 죽음을 당하실 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지금껏 병자를 고쳐주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권위 있는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 처신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런 메시아의 실패를 원하지도 않았고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희망을 좇거나 더 큰 기적들을 기대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아들을 넘겨주시는 분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십자가 처형이라는 방법을 통해 구원을 계획하신 분도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9,44)라는 말씀에서 ‘넘겨질 것’이라는 수동형의 표현은 인류 구원 계획을 주관하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 모두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신 것입니다.

온갖 편리함 속에서 신속성과 간편함, 효율성을 추구하는 오늘의 사회에서 나 역시 그 흐름 속에 젖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지 않고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과 일치에 이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시련의 터널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라고 초대하십니다. 그 어둠 속에서 부활의 빛을 볼 수 있도록 늘 마음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 예고를 통해 일상에서 체험하는 고통과 시련, 좌절과 실패, 아픔과 슬픔을 수난하신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견디어냄으로써’ 부활의 기쁨, 인생의 행복을 맛볼 수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일이나 대인관계, 사회문제를 통해 겪는 불편함과 어려움과 고통 모두가 나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내 인생의 터널임을 새기는 복된 날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