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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29 조회수957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9월 28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Whoever receives this child in my name receives me,
and whoever receives me receives the one who sent me.
(Lk.9,18)
 
제1독서 즈카 8,1-8
복음 루카 9,46-50
 

얼마 전에 제 신학교 추천 신부님의 칠순 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이 미사의 강론을 제게 부탁을 하시더군요. 솔직히 많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어려웠지만 지금도 큰 어른으로 생각하기에 많이 어려운 분이거든요. 따라서 오랫동안 어떤 강론을 할까 하고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민을 하다가 문득 나이 계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뵐 때 저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그때 나이가 18세였으니까 28년 전입니다. 그렇게 계산을 해보니 그 당시 추천 신부님의 나이가 지금의 제 나이보다도 적다는 것입니다. 계산이 잘못 되었나 싶어서 다시 계산해 보았지만 역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그때에 할아버지처럼 연세가 엄청나게 많으신 큰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저는 과연 다른 이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혹시 “아직도 철부지야. 얘들 같아.”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튼 ‘참 시간이 빠르다.’ 라는 생각과 함께, ‘그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거의 반세기를 살아왔지만 아직도 부족함이 너무나 많은 저인 것 같습니다. 나무는 오래될수록 기품이 나는데, 제 모습은 점점 더 추해지는 느낌은 왜 일까요?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자기 몫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더 근본적인 질문이고 이 질문에 대해 충실히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어린 나이에 주님 곁으로 가는 사람도, 또한 너무 오래 산다고 할 만큼의 장수를 누려도 불공평한 주님의 처사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고 적게 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사는 것, 그래서 이 세상을 보내신 주님의 창조 목적에 맞춰서 나답게 후회 없이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묵상을 해보니, 이 세상 안에서의 모든 지위의 높고 낮음 그리고 재물의 많음과 적음이 주님 앞에는 별 것 아닙니다. 이 세상 안에서의 생활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순간을 열심히 살았고, 특히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사랑의 삶을 살았느냐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논쟁을 합니다. 이 논쟁을 들은 주님께서는 얼마나 속이 타셨을까 싶습니다. 이제까지 그토록 강조해서 말을 했지만, 아직도 세상의 판단을 가지고 높고 낮음을 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제자들을 비롯한 우리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싶은지 스스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치유의 시작이다(로버트 존슨).


우리 동네에서 바라 본 보름달.

 

나의 이야기를 만들자.

전에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렸을 때 살았던 장소에 대해 말하게 되었습니다. 안중이 어쩌고, 용현동이 어쩌고, 주안이 어쩌고 하면서 옛날 추억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지요. 그러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나이 드는 것은 이렇게 기억할 나만의 이야기를 많이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야 뭐든 구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만 있을 것 같았지요. 여기서 조금 나이를 더 먹어 20대 후반만 되면 사람들은 “나이 먹는 것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해 놓은 것도 없는데 시간만 자꾸만 간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해 놓은 것이 정말로 없을까요? 그동안 노느라 경력을 쌓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나만의 이야기를 나이가 들수록 많이 간직하게 된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힘으로 살아갈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나만의 이야기가 어렵고 힘든 이야기라면 ‘그때 그렇게 힘들었는데...’라면서 ‘지금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고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나의 이야기가 좋고 아름다운 이야기라면 이 역시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과거의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이 든다는 것, 무조건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나이만 먹는 것이지요. 소중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지 못하고 나이 먹는 것, 그래서 먼 훗날의 어느 순간을 미소 짓게 만들 이야기 거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분명히 힘든 날을 만드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한 많은 것들을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서 섰을 때,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라면서 질문하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시겠습니까? “그냥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라면서 동정표를 유발하시겠습니까? 주님 앞에 나의 이야기, 특별히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랑 이야기를 당당히 전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이 먹는다는 것이 그리 두렵지 않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그만큼 많아질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더욱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꾸며야겠지요?


우리 동네 사진 한 장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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