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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직 그분만을 따르겠다는 이는 /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30 조회수716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날 대부분의 인간은 무엇엔가 중독되어 있단다.

술이나 마약, 도박처럼 사회적 문제를 크게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영성에서 하느님 이외의 것에 집착하는 것은 다 중독으로 이해해도 될 게다.

일상에서 다소 건강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게 영적인 자유를 방해한다면 다 중독일 수 있다.

그래서 중독된 감각을 정화하고 영적인 자유를 누리려면

자신의 지체 일부를 잘라내는 아픔과 같은 힘겨운 변신 과정을 겪어야만 하리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염려와 걱정을 넘어 아예 불안해지기까지 하는 오늘날,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ㄴ)”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처절하면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확실한 대책은 어디를 봐도 오리무중이다.

그러기에 모든 안전과 기득권을 계산하지 않은 채 모든 걸 포기하고서는,

주님을 감히 따라나서겠다고 응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게다.

실상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지만,

오히려 세상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힐끗힐끗 망설이는 이가 도처에 부지기수이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자기가 붙잡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도와만 주신다면야 이것쯤이야 하시라도 가능하리라.

 

주님을 따르는 것은 삶의 가치에서 그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최고의 가치에 주님을 두는 것, 그러면서 거기에 합당하지 않는 것은 과감히 버리는 거다.

가을의 단풍나무처럼 우리도 자신을 비우고 버리기 시작할 때부터 아름다워지리라.

우리가 맨 앞에 내세우고 있는 삶의 가치를 과감히 바꾸는 순간,

낙엽을 떨어뜨리는 나무처럼 버릴 것이 참으로 많아질 게다.

그리하여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만 남는다. 거기에 삶이 단순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오늘 복음의 세 사람은 그렇게 말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 9,57)” 첫 번째 이의 고백이다.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 9,59)” 두 번째의 청원이다.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 9,61)”

세 번째도 지나친 말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받아들이지 않으신다.

‘쟁기에 손을 대었다면 뒤돌아보지 말라.’라며 되레 다그치신다.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기에.

첫 사람은 ‘삶의 도피’를 원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오해했던 것이리라.

둘째는 아버지의 상속에 ‘미련’이 있었다.

예수님을 따르고 싶지만 그것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셋째는 가족들 핑계다. 지난날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희생 없이는 은총도 없는 법이다.

 

사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라는 이의 지나친 신심은 광신으로 바뀔 수 있다.

곧, 자신을 괴롭히고 남을 힘들게 하는 신심이다.

이런 괴롭히는 신심을 어찌 바른 신심이라 할 수 있으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신다.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삶 속의 조용한 추종의 실천이지, 그저 붙어 다니며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사건건 주님의 뜻이라면서 자신을 못살게 굴어서는 안 되리라.

하느님께서는 일일이 간섭하시는 아버지가 아니시니까.

 

어떤 이는 예수님을 따라 집을 떠나기에 앞서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겠단다.

우리 눈으로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다. 대단히 중요하고도 큰일일 게다.

부모님의 장사를 치르는 일도 더없이 대단히 중요하고도 큰일이리라. 예수님께서도 모르실 리 없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긴급하다고 하시면서 지나간 일에 매달리지 말라신다.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일이,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일이며,

새들이 깃들이는 보금자리보다 더 아늑함을 마련해 주는 일이기에.

 

우리가 이 일이 참으로 소중한 사명임을 깨닫는다면 다른 모든 것을 아낌없이 포기해야 할 게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도 만사를 제쳐 두고서라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데 서슴없이 나설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마음 자세를 바르게 전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고난의 길을 각오해야만 한단다.

심지어는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머리마저 기댈 곳조차 없는 고독한 삶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단다.

의당 ‘그렇게까지 야!’라고 할지 몰라도 그렇다.

 

그분의 제자가 되고자 쟁기를 잡았다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듯이, 세상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게다.

혈육의 정에 얽매이거나 과거에 집착하는 이는 하느님 나라의 개척자가 될 수 없기에.

순교의 삶을 걸어간 이들이 남긴 발자취를 더듬지 않더라도

제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길을 뒤돌아보지 말고 묵묵히 가야 할 게다.

오직 주님만을 따르면서 영적인 자유를 누리려면

이렇게 자신의 삶의 일부를 과감히 버리는 정말 힘겨운 과정을 겪어야만 하리라.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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