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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01 조회수1,284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Amen, I say to you,
unless you turn and become like children,
you will not enter the kingdom of heaven.
(Mt.18,3)
 
 
제1독서 이사 66,10-14ㄷ
제2독서 1코린 7,25-35
복음 마태 18,1-5
 

“아저씨~ 안녕하세요?”

한 꼬마아이가 저를 향해서 인사합니다. 저는 갑작스런 꼬마의 인사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응, 그래……. 안녕?”이라고 어색하게 대답했지요. 제가 왜 인사하는데 이렇게 어색해 했을까요? 바로 아파트의 승강기 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솔직히 승강기 안에서는 아는 체 하기가 좀 쑥스럽습니다.

‘혹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워낙 이상한 사람이 많다보니…….’

이런 마음으로 인해서 좁은 승강기 안에서는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도 피하게 됩니다. 또한 요즘에 워낙 사건사고가 많다보니 좁은 승강기 안에 함께 있으면 숨까지 죽이면서 얌전하게 가만히 있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승강기 안에서 인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어색한 분위기에 아예 눈을 감고 있거나,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면서 서로를 외면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꼬마아이는 저를 전혀 몰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사를 했던 것이지요. 이 아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떤가? 내 마음이 그렇지 않으면 족한 것이 아닐까?’

어른이 되면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좋은 행동을 해야 하는 순간에서도 많은 생각으로 머뭇거리게 되고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으로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그러한 남의 시선에 있어서 자유롭습니다. 자신이 배운 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른들은 서로 어색해서 외면하는 승강기 안에서의 인사도 자신 있게 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은 소화(小華 작은 꽃) 데레사로 불리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입니다. 성녀의 삶은 아주 짧습니다. 열다섯의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주님 곁으로 가셨기 때문이지요. 수도원에서 많이 아팠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기도 벅찰 것입니다. 그러나 성녀는 자기 자신보다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먼 곳에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자기와 상관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신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을 위해 자신의 짧은 생 동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어린이의 옳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행하는 단순함, 잘못에 대해서 쉽게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는 순수함 없이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단순함과 순수함을 간직하셨던 성녀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외면하려 하고 각종 핑계로 자신의 옳음을 억지 주장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두려움은 적게 희망은 많이, 먹기는 적게 씹기는 많이, 푸념은 적게 호흡은 많이, 미움은 적게, 사랑은 많이 하라. 그러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이 당신의 것이 되리라(스웨덴 속담).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버릴 줄 아는 용기

튤립 꽃에 관한 유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인의 미모에 뭇 남성들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윽고 용기 있는 세 명의 남자가 여인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한 명은 이웃 나라 왕자였고 또 한 명은 용맹한 기사, 그리고 또 한 명은 부유한 장사꾼이었습니다. 여인은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스러웠습니다. 세 명 다 놓치기 아까운 남자였던 것이지요.

고민은 몇날 며칠 계속 되었고 급기야 한 달을 넘어 두 달로 이어졌습니다. 그 고민의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다림에 지친 세 명의 남자는 여인을 떠났습니다. 세 명의 남자가 떠난 사실을 안 여인은 그제야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후회는 곧 병이 되었고 불운하게도 여인은 시름시름 않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훗날, 여인의 무덤에서 꽃 한 송이가 피었는데 그게 바로 튤립이랍니다.

이 여인이 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을까요? 바로 포기하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것들은 놓을 줄 알아야 하는데 모두 다 탐을 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 선택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명한 선택이란 더 큰 하나를 위해서 다른 것을 놓아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들은 모든 것을 다 갖고자 하는 욕심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버릴 줄 아는 용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리지외의 데레사 대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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