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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02 조회수912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0월 2일 수호천사 기념일
 
For I say to you that their angels in heaven
always look upon the face of my heavenly Father.
(Mt.18,10)
 
 
제1독서 탈출 23,20-23
복음 마태 18,1-5.10
 

저는 커피를 아주 좋아합니다. 사실 어렸을 때에도 커피를 마시는 했지만, 그때는 완전히 설탕 맛에 마셨던 것 같습니다. 둘, 둘, 둘이라고 하지요?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 환상의 조합이라고 하는데, 어렸을 때는 커피는 아까워서 하나, 프림은 둘, 그리고 설탕은 많이 넣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누나는 설탕을 넣지 않는 것입니다. 설탕을 넣지 않아야 개운하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호기심에 마셔보았지만 이 쓴 커피를 왜 마시나 싶었습니다. 역시 커피에는 설탕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고 하면서 누나가 커피 맛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그런데 어렸을 마셨던 달달한 커피는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쓴 것을 왜 먹냐고 할 정도로 진한 커피를 많이 마십니다. 어제도 커피를 진하게 한 잔 내려 마시면서 문득 어렸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때의 입맛과 지금의 입맛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얼굴도 변하고, 목소리도 변하고, 또 입맛도 변합니다. 하긴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는 영원하지 않고 계속 벗겨지고 다시 태어난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 이전의 세포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약 11개월이랍니다. 따라서 11개월만 지나면 우리는 11개월 전과 전혀 다른 세포를 구성하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됩니다. 그만큼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우리들을 구성하는 세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지만, 우리들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사랑 역시 변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할까요? “저 사람이 변했어.”라고 말하면서 변화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변하는 것을 ‘그럴 수도 있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도 덜 받게 됩니다.

변하지 않는 분은 오직 한 분, 주님뿐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한결 같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안에서 우리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오늘 우리들이 기념하는 수호천사 기념일도 주님의 사랑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천사 한 분을 정해 주시어 그를 지키고 도와주게 하신다고 하지요. 그 천사가 바로 수호천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께 불평불만을 자주 던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심하고 그 사랑이 변한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호천사까지 보내주셔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계속해서 유지하시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고 모든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성 아우구스티노).


나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가 있음을 잊지 마세요.

 

지금 교회의 모습

교회의 모습이 성 토요일은 아닐까요? 제자들은 모두 다락방에 벌벌 떨며 숨어 있으면서 예수님 제자의 몫을 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은 “그래. 무슨 메시아야. 그냥 저렇게 허망하게 죽어 버리는데...” 하면서 “호산나”라고 큰소리로 환호했던 목소리를 뒤로하고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해야 할 몫을 하지 못하고, 주님을 배척하는 모습이 바로 현재 교회의 모습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의 뜻을 세상에 실천하는 것은 당연히 하지 않으며, 주님이 어디 있냐면서 성당 나가는 것을 커다란 시간 낭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당 안에서 젊은 사람들을 찾기란 정말로 힘들어 졌으며, 주일미사 참석율도 점점 줄어들어서 교적 상 신자 수의 30% 아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늙은 교회, 침묵하는 교회, 작아지는 교회의 모습에서 주님이 묻혀계신 성 토요일을 체험하게 됩니다. 신앙에 있어서 세상의 가치 앞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 신앙이 먼저가 아니라 세상 삶이 먼저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본당신부 탓에 신앙생활을 못하겠다고 말하고, 본당에 나가는 어떤 신자 탓에 도저히 성당에 못 나나겠다고 합니다. 교회의 딱딱하고 권위적인 모습이 싫다면서 성당을 안 나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은 성 토요일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셨듯이, 우리 교회 역시 다시 부활하리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처럼 모두가 서로를 위해 사랑을 쏟는 공동체로 새롭게 분명히 부활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과정 역시 분명히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마치 청소년이 혼란과 반항의 시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가는 것처럼, 우리 교회 역시 분명히 주님의 보호 아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새롭게 부활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이 계신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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