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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에덴 동산엔 둘밖에 없었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03 조회수94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연중 제27주일


<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복음: 마르 10,2-16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


안젤리코 작, (1450), 프레스코, 169x134 cm,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 에덴동산엔 둘밖에 없었다 >


  

동남 아시아인들의 위험하고도 고된 일들을 찾아 취재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한 감동적인 사연을 접했습니다. 보석을 찾는 광부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흙을 담은 가마니가 머리 위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동생이 광부 일을 이어가며 가족을 부양합니다. 결혼을 며칠 앞두고 그런 일이 벌어져 결혼하기로 했던 여인이 몇 년째 지극정성으로 반신불구가 된 옛 애인을 떠나지 못하고 돌보고 있습니다. 결혼을 한 것도 아니어서 새 출발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없는 사람을 양심상떠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평생 옛 애인의 간호를 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그런 부부를 보면 남편이나 아내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하지 못한다고 이혼이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부부는 육체적인 관계 그 이상의 무엇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모세의 가르침과 다른 대답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그분을 함정에 빠뜨릴 계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그들에게 모세는 어떻게 가르쳤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모세가 아내에게 이혼장을 써 주면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했다고 대답합니다. 이혼장은 남자들이 아내를 무작정 버려 재혼할 수 없는 상태로 두지 못하도록 꼭 써주어야 하는 버려진 여자들을 위한 법이었습니다. 이혼장이 있다면 그나마 이전 혼인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다른 사람과 혼인하여 생계를 꾸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하시며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는 일부일처제로 살도록 하느님에 의해 정해졌음을 가르치십니다. 에덴동산에서 둘이 한 몸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아담은 하와를 버릴 권리가 없습니다. 하와를 버릴 수도 없는 것이 에덴동산에 다른 여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드신 분이 하느님이시라면 그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드시는 분 또한 하느님이십니다. 아주 처음부터 아담에게는 하와밖에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아담이 어떻게 마음대로 주님께서 짝지어주신 여자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렸을 때 형과 싸우면 부모님은 잘잘못은 가리려 하시지도 않고 항상 동생인 제가 잘못했다고 야단치셨습니다. 형에게 대드는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왜 내가 형에게 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이야 많은 것을 해 주셔서 당연히 보답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형들이야 크게 해 주는 것이 없는 데도 동생으로서의 의무만 강요당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해서 동생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형이 잘나서 먼저 태어난 것도 아닌데 무조건 형이니까 순종해야 한다는 부모님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하여 동생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또한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원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부모와 형들을 정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섭리로 이루어진 관계를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부모나 형제에게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맺어주신 하느님께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관계는 인간이 원해서 맺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맺어주시는 것입니다.

 

트루니에는 스위스의 내과 의사이자 정신의학자이며 유명한 저술가입니다. 그가 쓴 책 중에 듣는 귀라고 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금실 좋은 부부로 소문났는데 그리스에 휴가를 갔다가 아내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죽기 직전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천국에 도착하면 먼저 가 계신 시부모님을 만나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

그 말에 남편 트루니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육체적으로만 결혼한 부부였던 것이 아니라 아내의 소망과 믿음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습니다. 부부관계는 자신들의 선택만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더 높은 차원의 끈이 존재합니다. 이런 차이는 부부 사이의 어려움이 닥쳐올 때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내가 선택해서 결혼했다고 생각한다면 저 사람과 괜히 결혼했네라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주님께서 맺어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어쨌거나 저 사람은 주님께서 맺어주신 나의 짝이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처럼 관계의 주인도 내가 아닌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부부간의 관계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신랑이시고 교회가 신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교회와 한 몸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신랑으로서 당신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고 우리는 그분의 신부로서 순명의 마음으로 아멘!’ 하며 그분을 우리 안에 받아들입니다. 만약 그분과 우리가 한 몸이 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떨어져나간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아드님만 데려가시고 우리는 버려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식은 떼려야 뗄 수 없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종이에 거룩한 피가 스며들면 그 종이에서 피를 뽑아낼 수 없어서 종이를 감실에 모셔 두여야 하는 것처럼, 성체와 성혈로 우리 안에 흡수되셔서 온전히 한 몸을 이루어야 하느님께서 아드님만을 데려가실 수 없어서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소돔 땅에서 롯의 가족이 빠져나가자 바로 유황불이 떨어졌듯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떨어져나가시면 우리는 구원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한 몸이 되어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상태가 부부의 상태여야 하고 그 믿음이 곧 구원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한 자매가 남편의 도박과 폭력으로 이혼을 결심하였습니다. 아내의 폭력으로 자신은 물론 태아까지도 검게 죽어서 유산되는 일까지 있었고 유리창으로 맞아 큰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뜻은 그 남편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장에 남편이 나와 있었습니다. 남편은 술과 도박을 끊었다고 말했고 거짓말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둘은 그 이후로 함께 성당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헤어져도 됩니까?”라는 물음 안에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인간적인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에 상대를 그런 사람으로 내가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몸이라고 한다면 내가 변하면 상대도 변한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주님께서 맺어주셨다는 것을 믿기만 한다면 그 관계 또한 주님께서 잘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관계의 주체가 우리들 자신이라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마지막 부분에 어린이들이 당신께 다가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모든 관계는 하느님이 정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개입하여 그분께서 맺어주시려는 것을 방해 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알아야합니다. 인간 스스로 선택하여 태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관계 또한 스스로의 선택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셔서 부부가 한 몸이 되어야 함을 믿어야 더 높은 차원으로 그리스도께서 신랑으로 우리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해 오셨음까지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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