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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04 조회수837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0월 4일 연중 제27주일
 
Therefore what God has joined together,
no human being must separate.
(Mk.10,9)
 
 
 
제1독서 창세 2,18-24
제2독서 히브 2,9-11
복음 마르 10,2-16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부간의 모든 불행은 신에게만 있는 완벽함을 인간에게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에 대해 완벽함만을 찾고 또 원할 때 비극과 불행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하긴 신혼 초에는 상대방을 GOD(하느님)으로 보면서 존중과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상대방이 완벽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알파벳이 뒤집어지면서 거꾸로 DOG(개)로 본다는 말이 있지요.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을 가까이하고,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그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실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서 이를 채워줄 사람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에서 찾다보면 내가 만나는 사람을 제대로 알 수도 없으며 가까이 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는 영원하지 않고 계속 벗겨지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전의 세포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약 11개월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11개월만 지나면 우리는 11개월 전과 전혀 다른 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또한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더욱 더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바리사이들이 모세의 율법을 내세우면서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시에는 이유가 있다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유가 참 낯 뜨겁습니다. 예를 들어, 식사 준비를 하지 못해도, 집안 청소를 하지 않는 것 등 사소한 이유가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이유에 속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절대로 아내를 버릴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어쩌면 부부간의 관계에서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 역시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관계인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 역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 되어야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하느님께서 맺어 주셨다는 그 소중한 관계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래 뜻은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오래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생각한다는 것을 곧 사랑한다고 했습니다(이어령).


제 조카가 어제 결혼했답니다. 멋진 부부가 되길 기도합니다.

 

행복에 대해서...

제가 처음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신학생 때, 노동현장을 체험해보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구로공단에서 일을 했던 적이 있었지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나 퇴근할 수 있었지만, 그때 한 달 동안 일을 해서 받은 임금이 18만원이었습니다. 너무나 적은 임금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별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습니다.

군대에 가서 이등병 때 처음 받은 월급은 5,800원, 일병이 되니 6,800원, 상병이 되어 9,000원. 그리고 드디어 병장이 되어 10,000원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계급에 따라 모두 똑같이 월급을 받으니 역시 그러려니 했습니다.

월급이 적다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할 일이 있었고 여기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들과의 비교를 하게 될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불공평한 세상에 대해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으며, 그러한 불평불만으로 인해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행복을 잊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세상의 불평등한 구조를 그러려니 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먼저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바라봅니다. 많은 이들이 어렵고 힘들다고 이야기하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보다도 더 살기 어려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어도 행복 안에서 살았던 사람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바로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찾은 사람이었고, 그 일들을 통해 행복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나의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진정한 행복은 세상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오히려 주님의 뜻이 담긴 사랑의 삶을 통해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할 일은 무엇일까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행복을 찾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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