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06 조회수955 추천수15 반대(0)

지난 금요일에는 성소후원회 하루 피정이 있었습니다. 강사 신부님께서는 참된 신앙인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지나간 과거 때문에 후회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히 길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매일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은 짧은 삶을 살았지만 하느님을 찬미하며 깊이 있는 삶을 사셨기에 순간을 살았어도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마더 데레사 성녀는 나이든 할머니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았습니다. 깊이 있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하느님을 찬미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두 분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베드로에게 바위라고 하셨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유다에게는 재정을 맡기셨습니다. 그만큼 유다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갑과 통장을 맡긴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와 베드로는 똑같이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은 예수님께는 똑같은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유다와 베드로는 똑같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고, 다시금 삶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지만 제자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고, 삶의 자리로 새롭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마치 돌아온 탕자에서 둘째 아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것과 같습니다. 유다는 잘못을 뉘우쳤지만 자기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성서가 말해 주는 것처럼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얻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도 나와 성격이 다를 수 있고, 직장에서, 이웃에서도 그렇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배격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없고, 직장에서도 즐겁게 지내기 어렵습니다. 본당에도 그렇습니다. 많은 단체들이 있고, 단체들은 서로 하는 일이 다르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단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배격한다면 본당 공동체는 분열되고 말 것입니다. 서로 다른 단체들을 받아들이고, 서로 협조할 때 본당 공동체는 발전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바오로 사도를 받아들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초대교회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교리를 발전시켰고,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하였고, 교회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가 처음부터 예수님을 따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였고, 잡아들였으며,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오로 사도를 받아들였고, 교회는 바오로 사도를 통해서 더욱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장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커다란 기둥은 성문을 열기에는 유용하지만 구멍을 막기에는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쓰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는 데는 고양이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재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엉이는 밤에 벼룩의 털까지도 보지만 낮에는 큰 산도 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본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돌아온 동생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버지께 투정을 부린 큰 아들처럼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동생의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투정을 부린 마르타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꽃들이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듯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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