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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강론]"전문 :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총회 개막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2015년 10월 4일 수요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09 조회수683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문 :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총회 개막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  

http://www.news.va/en/news/holy-mass-for-the-opening-of-the-14th-ordinary-gen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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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5년 10월 4일 주일 [연중 제27주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제1독서: 창세기 2,18-24

                      화답송 : 시편 128(127),1-2.3.4-5.6(◎ 5 참조)

제2독서: 히브리서 2,9-11  복음: 마르코 복음 10,2-16<또는 10,2-12>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6863&gomonth=2015-10-04&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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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 14차 정기총회 개막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베드로대성전, 연중 제27주일, 2015년 10월 4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요한 1서).

 

이번 주 일요일의 성경 말씀은 교회가 겪고 있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선택된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가족을 주제로 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인데 이 성찬의 전례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들은 세 가지 주제가 중심이 됩니다.

 

고독

 

아담은, 우리가 제1독서에서 들은 것처럼 에덴 동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다른 창조물들에게 그 모두 것들에 대한 그의 지배, 그의 분명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권한에 대한 증거로서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독함을 느꼈는데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창세기 2, 20)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외로웠습니다.

 

고독함의 상황은 우리 시대에 셀 수 없이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녀들에게서 버림 받은 노인들과 배우자와 사별한 남성과 여성들, 그리고 배우자가 떠나 버린 많은 남성과 여성들, 고독하고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 주지 않고 잘못 이해한다고 느끼는 사람들, 전쟁과 박해에서 피신한 이민자들과 피난민들, 그리고 소비주의의 문화와 낭비의 문화와 버리는 문화의 희생이 된 많은 젊은 이들에 대해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호화로운 맨션과 고층 건물로 가득 차 있지만 가정과 가족의 따뜻함이 줄어 들고 있는 글로벌화된 세상의 모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야망에 찬 많은 계획들과 프로젝트들, 하지만 그것들을 즐길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엔터테인먼트의 정교한 방법들, 하지만 내면적인 고독함은 깊이 자라납니다. 많은 즐거움들, 하지만 사랑은 얼마 없습니다. 제멋대로 하는 많은 방종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거의 없습니다…… 이기주의와 우울함과 파괴적인 폭력과 즐거움과 돈에 대한 노예살이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수가 늘어 가는 동안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만 갑니다.

 

오늘 우리의 경험은 어떤 면에서 아담의 경험과 같습니다. 너무나 많은 권한 그리고 동시에 너무나 깊은 고독과 나약함. 가족이 이러한 모습입니다. 아프거나 건강할 때, 더 좋거나 나쁠 때, 행복할 때나 힘든 때에 견고하고 결실을 맺는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진정한 마음이 점점 더 적어 집니다. 지속되고 진실하며 성실하고 안정적이며 결실을 맺는 사랑은 점점 더 경시되고 과거의 옛날 유물처럼 보여 집니다. 가장 앞선 선진국들이 가장 출생률이 낮은 나라 들이며 낙태율, 이혼율, 자살 비율, 그리고 사회와 환경의 오염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들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

 

제1독서에서 우리는 또한 하느님께서 아담의 외로움에 마음 아파하셨음을 듣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기 2,18). 이 말씀은 그 자신의 것과 다른 누군가의 마음, 그를 사랑하여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을 없애 주는 마음만큼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행복을 위해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그들을 보완하는 누군가와 함께 그들 여정을 나누도록, 사랑의 위대한 경험을 살아 가도록, 즉, 시편에서 오늘 말씀하셨듯이(시편 128 참조) 사랑하고 사랑 받고 그들의 사랑이 아이들 안에서 열매 맺는 것을 보도록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꿈입니다. 그분의 창조물이 남자와 여자의 사랑하는 결합 안에서 충만하고 함께 나누는 그들의 여정 안에서 기뻐하고 자신에게 주신 그들 서로의 선물 안에서 결실을 맺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늘의 복음에서 주시는 것과 같은 계획입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마르코 복음 10, 6-8, 창세기 1, 272-24)

 

수사적 반문에 대해 아마도 불가침의 확고한 사실로서 이혼을 실제로 했던 군중들 앞에서 예수님의 인기를 빼앗기 위한 덫으로써 질문한 ― 예수님께서는 직설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인간의 사랑을 축복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에 결합하시는 분이심을, 일치와 그 불가해성 안에 결합하는 분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태초로, 창조 때로 되돌려 놓으십니다. 이것은 부부의 삶의 목표가 단순히 인생을 함께 산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선물하신 질서를 다시 세우십니다.

 

가족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코 복음 10,9). 이것이 믿는 이들에게 전하시는, 협소한 자기중심주의와 하느님 계획 안에서의 부부와 인간 성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함을 숨기는 개인주의와 율법주의의 모든 형태를 극복하라고 하시는 권고입니다. 

 

진실로 오로지 거저 주시는 예수님 파스카 사랑의 어리석음의 빛 안에서만 일평생 전념하며 거저 주는 부부 사랑의 어리석음이 이해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결혼은 청춘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그것이 없으면 그분의 창조물들이 고독 속에 불운해지고 말 꿈입니다. 진실로 이 계획을 받아 들이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사람들은 자주 이 계획을 비웃는 ― 계속해서 모든 진정한 사랑, 모든 변함없는 사랑, 모든 진실한 사랑 그리고 참아 주는 사랑에 이끌리고 매혹 당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진정한 사랑을 꿈꾸면서 덧없는 사랑을 쫓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육욕의 즐거움을 쫓으며 그러나 온전한 자기 희생을 갈망합니다.   

 

“우리가 충만하게 무한한 자유의 약속을 맛보아 왔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번 옛 구절을 음미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싫어짐”. 금지된 즐거움들은 금지되지 않게 된 순간 그 매력을 잃었습니다. 설령 그것들이 극단적이고 끝없이 다시 새로워지는 것이라 해도 그런 기쁨들은 따분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것들은 유한한 실재이기 때문인데 한편 우리는 무한함을 갈망합니다.( Joseph Ratzinger, Auf Christus schauen. Einübung in Glaube, Hoffnung, Liebe, Freiburg, 1989, p. 73)

이런 극단적으로 어려운 사회와 결혼의 맥락에서 교회는 충실함과 진리와 사랑 안에서 그 사명을 완수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진실한 사랑을 지키고 하느님 사랑을 발현하는 경험으로써 혼인 생활을 살아가는 많은 가족들을 격려하면서 교회가 교회의 주인이신 분께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로서 충성을 다해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즉, 모든 삶, 삶의 신성함을 지켜내면서. 하느님 은총의 증거로써,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간 능력의 증거로써 부부의 결합의 일치와 불가해성을 지키면서 말입니다.

 

교회는 지나가는 유행이나 인기 있는 의견으로 인해 변하지 않는 진리 안에서 그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개인과 인류 전체를 자기중심주의의 유혹에서 지켜내고 결실을 맺는 사랑이 불모의 이기주의로 변하는 것에서 지켜내고 열매를 맺는 결합이 일시적인 결합이 되는 것에서 지켜 냅니다. “진리가 없으면 자선은 감상적인 것으로 퇴화됩니다. 사랑은 빈 껍질이 되어 잘못된 방법으로 충족됩니다. 진리가 없는 문화 안에서 이것은 사랑에 대한 치명적인 위험입니다.( Benedict XVI, Caritas in Veritate, 3)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코 복음 2, 27)를 기억하면서 근본적인 가치들을 가르치고 지키는 교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진정한 사랑을 가르치는 교회. 상처입은 인류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사명을 게을리하지 않는, 외로움을 멀리 떨쳐 버릴 수 있는 교회.

 

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잘못과 악은 언제나 심판 받아야 하고 반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쓰러진 사람과 잘못한 사람은 이해 받아야 하며 사랑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를 사랑해야 하며 우리 시대의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요한 바오로 2세, Address to the Members of Italian Catholic Action, 1978년 12월 30일)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야 하며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그들과 동행해야 합니다. 문이 닫힌 교회는 자기 자신과 자기 사명을 배반하며 또한 다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이 됩니다.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히브리서 2, 11)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는 주교 시노드 동안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그분의 교회를 이끌어 주시기를,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그분의 정결하신 정배 성 요셉의 전구를 통하여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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