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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선악과가 미치는 영향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11 조회수988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연중 제28주일


<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


복음: 마르 10,17-30




 엘그레코의 오순절



  

< 선악과가 미치는 영향 >

 

오늘 한 부자가 예수님께 와서 선하신 스승님!”이라고 인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인사가 당연하다고 느낍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또한 사람을 너무도 쉽게 선한 사람, 악한 사람으로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하신 분이고 가리옷 유다는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리옷 유다를 제자로 뽑은 예수님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선하고 완전히 악하다고 판단하는 모습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가리옷 유다가 예수님께서 주신 빵을 먹고는 그가 완전히 사탄에 사로잡히기 전까지 예수님은 그 안에서도 선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1900년대 중반에 미국사회는 급격한 범죄율 증가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많은 사회 범죄학 전문가들이 모여 현상을 분석한 결과 여러 가지 이유가 나왔는데, 가장 큰 설득력을 가진 이유 중의 하나는, 저소득·빈곤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흑인들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퍼져 많은 미국인들은 흑인을 더욱 경계했고, 심지어 흑인들을 미국 땅에서 몰아내자는 운동까지 일어났었습니다. 당시 흑인의 한 인권 운동가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왜 이 땅에 존재합니까?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우리들이 여기에 오게 된 것은 백인들의 탐욕과 불의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오랜 세월 노예로 고통 받았고, 아직도 가난과 빈곤 속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있는 건 누구의 잘못입니까? 흑인입니까? 백인입니까?”

 

백인들은 자신들 안에도 잘 살고 있었던 흑인들을 노예로 끌어왔던 잘못이 있음에도 그것은 보지 못하고 무조건 피해만 받는 선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흑인들은 악한 사람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람을 그저 선과 악의 이중구조로만 판단하는 것은 너무도 단순무식한 일입니다.

장자는 빈배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이야기합니다. 만약 어떤 배가 자신이 탄 배 앞으로 다가온다면 부딪히지 않도록 소리를 지를 것이고 그래도 다가와 부딪힌다면 매우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배에 사람이 탔을 때만을 전제로 합니다. 만약 빈 배가 다가오고 있다면 그 배에 대고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빈배가 자신에게 부딪혔을 수도 있는데 무조건 사람이 타고 있다고 판단해버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렇게 선과 악의 단순구조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아담과 하와처럼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는 자신이나 옆의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선악과나 생명나무 두 나무 가운데 하나를 먹을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 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나니 이제 사람을 선악구조로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알게 된 지식은 사람을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선과 악을 분별할 줄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죄를 짓기 이전에 이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는 것이 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과 악을 알게 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일까요? 이젠 순수하게 선과 악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선하게 보이고 어떻게 하면 악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선과 악의 이중 구조로 심판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 안에는 선도 들어있고 악도 들어있는데 그것들을 무시하고 사람 자체를 선악 구조로만 판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신들을 판단해버립니다. 그래서 알몸인 것을 부끄럽게 느꼈던 것입니다. 이것 자체가 선악과를 먹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또한 아담은 하느님도 하와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나쁘다고 판단하게 되고 자신에게 그 열매를 먹게 만든 하와 또한 악하게 판단해버립니다.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한 사람이 아닌, 선한 사람 혹은 악한 사람으로 사람을 결정지어버리는 것이 선악과의 영향인 것입니다.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라는 말씀은 사람을 선악구조로 판단하지 말고 사람을 쉽게 선악구조로 판단하지 말고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한 존재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선한 분으로 쉽게 단정 짓고 자신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고 잘 살고 있다고 판단해버립니다. 이는 자기처럼 살지 않는 다른 사람은 악하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아버지만이 선하다고 하시며 사람을 선악구조로 단순하게 판단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에게서 계명을 잘 지킨 면을 끌어내시며 선한 면도 드러내십니다. 동시에 재물에 집착하고 있는 그의 모습도 드러내시며 악한 모습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는 우울해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안에서 이제 선과 악이 비로소 싸움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누군가 죄와 싸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죄인이 아니라 성령께서 활동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싸우고 있지 않다면 오히려 악에 점령당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만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성령님을 받으시고 악과 싸우기 위해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요 권력자인 젊은 사람은 자신이 지닌 욕심과 싸움 자체를 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안에서 싸움이 일어나게 만듭니다. 마음에 혼란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 하고만 있다고 믿었던 부자청년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싸움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다른 사람도 무조건 착하거나 무조건 악하다고 판단하는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두 소녀가 바다에서 조개를 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크고 예쁜 조개껍질이 눈에 띄는 것이었습니다. 두 소녀는 동시에 그 조개껍질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먼저 자기가 먼저 보았으니 자기 것이라며 소유를 주장했습니다. 물론 목소리가 큰 쪽이 그 조개껍질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조기껍질을 차지하지 못한 소녀는 상대를 안 좋은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말도 안 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각자 조개를 줍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개껍질을 빼앗긴 소녀 눈앞에 반짝반짝 진주가 들어있는 조개가 놓여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진주를 재빠르게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조개를 주웠습니다. 그러다가 또 동시에 이전보다 더 예쁜 껍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목소리 큰 소녀의 손이 먼저 그 껍질을 덮쳤습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르게 그 껍질을 쉽게 양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 안에도 다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을 주어도 될 만큼 귀한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 안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친구를 선악구조로 판단하는 것이 멈추게 된 것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에덴동산에 공존하듯이 모든 사람 안에는 선과 악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완전히 선이기도 어렵고 완전히 악이 되기도 어렵습니다. 하느님에게나 악마에게 완전히 점령해버리기 전까지는 선악구조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하기 전까지는 어쩌면 부자 청년처럼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이럴 때가 가장 위험한 상황인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어 악이 자신을 거의 점령해버리면 자신은 싸우지 않고 정체되어 있으면서 타인 또한 자기식대로 선하거나 악한 사람으로 판단해버립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싸우지 않기 때문에 타인 안에서도 그런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사람은 타인도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음을 믿고 사람 자체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선도 보고 악도 봅니다. 선악을 분별할 줄 알지만 그래서 사람을 선악으로 구분 짓지 않습니다. 성모님께서 뱀을 밟고 계시는 이유는 선악을 구분 못해서가 아니라 악이 당신을 점령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항상 당신 발밑에 악이 꿈틀대고 있고 까딱 잘못하면 당신도 물릴 수 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천사가 나타났을 때 몸을 움츠리며 두려워하셨던 것입니다. 성모님마저도 그럴진대 우리가 어떻게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기에 자신도 타인도 완전히 선하고 완전히 악하지 않아서 그런 선택의 가능성을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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