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17 조회수92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1018/주일복음말씀(2독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10,5-21)

 

<전교주일을 맞아, 2독서로 로마서10,9-18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이 말씀의 요점은 복음 전파와 믿음은 성령의 역사와 인도에 의존한다(17)는 것이다. 이 말씀을 석의(釋義)하기 위하여 로마10,5-21절로 확장하여 읽음이 유익하다>

 

 

1.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10,5-13)

이스라엘이 추구한율법에서 오는 의로움’(율법의 의)에 대하여, 모세는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것으로 살 것이라고 기록하였다(10,5; 레위18,5; 갈라3,12).

로마10,5절에모세는 율법에서 오는 의로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실천하고 있는 이는 그것으로 살 것이다.”라고 말한다. 율법의 준수는 모세 언약의 의무, 곧 이미 수립된 언약 안에 계속 머무르며,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복들을 계속 누리기 위한 조건이다.

 

율법의 준수는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 곧 신약 백성이 되는 데 기여하는 업적은 아니다. 사실상 죄의 권세 때문에 율법 순종은 불가능한 것이었다(3,9-20; 7,14). 반면에믿음에서 오는 의로움’(믿음의 의)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계시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셔오기 위하여 하늘에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다. 바로 이것은 성육신에 대한 암시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모셔 올리기 위하여 음부에까지 내려갈 필요도 없다. 바로 이것은 부활에 대한 암시이다.

 

10,6-7절에서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가 하늘로 올라가리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또 말합니다. 누가 지하로 내려가리오? 하지 말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모시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라고 말gks다. 왜 그러한 시도가 불필요하고 어리석은가? 그리스도는 이미 오셔서, 곧 성육신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온 세계에 주와 그리스도로 선포되었다(사도2,36). 그리스도는 이제 믿는 자들이 즉시 접근할 수 있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믿음의 말씀, 곧 복음 안에서 우리 앞에 등장하시기 때문이다!

10,8절은 의로움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한다. 8절의 믿음은 그리스도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다. 곧 기록되고 인쇄된 말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리킨다.

 

로마10,5-8절을 정리하면, 레위18,5절의 말씀을 통하여 바오로 사도는 율법의 의에 대한 원칙을 설명하며(5), 시편107,26절의 의미를 가미하여 신명30,11-14의 말씀을 대담하게 해석함으로써 믿음의 의의 본질을 설명한다(6-8).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 예를 들어 율법에 대한 열성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메시야)를 하늘에서, 또는 음부로부터 모셔오는 것과 같은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킴으로써 결정적인 일을 수행하셨다!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 행위가 생명으로 인도하며, 그것은 각 사람에게 가까이 있으며, 복음의 기쁜 소식 속에, 곧 믿음에 관한 말씀 속에 현재해 있다(8). 그러므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한 가지는 믿음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믿음만이 중요하다!

10,9-10절은 그대가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라고 말한다. 9-10절은 신명30,14절의 입과 마음이라는 표제어를 해석한다(8).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고백은 그리스도의 지배가 자기 자신의 삶과 온 세상에 미친다는 것을 시인함을 뜻한다(1코린12,3; 필리2,9-11).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느님의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소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4,24;1코린15,1-5).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고백하는 것은 불가분리적으로 하나에 속한다. 이것들은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미리 이루어야 할 공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행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이 이것들을 통하여 작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들은 구원하고 의롭게 하는 작용력이 있다.

 

여기에는 사도 바오로 복음의 핵심이 나타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건의 종말론적인 이해이다. 곧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리하여 새로운 시대를 도래시키시고 주(Lord)가 되어 다스리신다(필리2,6-11).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인간 존재의 중심인, 곧 마음으로 믿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10,11절은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이사28,16; 로마9,33)고 말한다. 여기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심판 때에 구출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약속은 유대인과 그리스인 모두에게 차별 없이 광범위하게 주어진다(3,22).

 

10,12-13절은유대인과 그리스인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요엘2,32; 사도2,21). 주님은 유대인만의 주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주님이시기에, 자기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이다.

10,13절은 요엘2,32절의 말씀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의 인용이다. 주목할 것은 바오로 사도가 여호와로 바꾸어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하신다.

       

2. 복음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순종(10,14-21)

그러나 10,14-15a그런데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라고 말한다.

14-15절 상반절에 있는 일련의 수사학적 물음은이스라엘이 믿는다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겨냥하고 있다.

여기서 강조점은 마지막에 놓여있다.

곧 파견되지 않았다면, 복음을 전파하고, 그것을 듣고, 믿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파송되었고 또 지금도 파송되고 있다!

 

15절 하반절은 이사야52,7절의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인용하였다. 기쁜 소식이 전파되었다! 사실 사도들과 선교사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에 이르기까지 널리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 대상은 먼저 유대인들이었고, 다음은 이방인들이었다. 그러나 16절은 부정적인 결과를 확정한다.

 

10,16절은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하고 말합니다. 단순히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에 반응하기를 명백히 거절하였던 것이다. 이 불순종을 미리 보고,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이사53,1)라고 말했다.

 

17절은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라고 다시 한번 14-15절을 요약한다. 여기서 첫 번째의 들음은 들은 바 그것, 곧 선포의 내용을 뜻하며, 두 번째 들음은 듣게 되는 것, 즉 선포 또는 설교를 뜻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복음 선포를 뜻하는데, 높이우신 그리스도 자신이 이 복음 선포에서 말씀하신다!(8)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들음과 그리스도의 말씀과 믿음에는 한 살아 있는 인격이 있어, 그 인격이 살아 있는 말씀을 선포하고, 그 인격이 사람의 영을 움직여 듣게 하며, 그 인격이 믿음이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믿음의 창시자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마음을 열지 않았다.

 

10,18절은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곧 이스라엘은 분명히 복음을 들었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시편19,4)라는 말씀처럼, 복음이 지중해 세계에 널리 선포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듣지 못하였다는 변명은 할 수 없다.

 

10,19a절에서 나는 또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듣기는 들었으나 복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는가?”만일 이스라엘이 복음을 분명히 들었지만 깨달을 수 없었다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에 근거해서 판단해 볼 때, 이스라엘이 은혜의 복음과 이방인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신명32,21절에서 모세는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고 말하였고(19b), 이사65,1절에서 이사야는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고 담대히 말하였기 때문이다(20).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불신에 대하여 핑계할 수 없다!

하느님이 이방인들에게 관심을 돌리신다는 바로 그 사실이 이스라엘의 귀와 눈을 열게 할 것이다(19b; 20; 11,11,13-14).

21절의 성경 인용 속에 종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21a절에 이스라엘은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백성이다. 하느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에서 루카복음 15,11이하의 아버지처럼 종일 손을 벌리고, 집 떠난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21b절에서나는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곧 하느님께서는 자기를 거역하는 자기 백성을 얻으려고 끊임없이 애쓰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애굽의 바로 왕처럼 마음을 강팍하게 하여 하느님을 멀리 떠났다.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조하시기를!)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하시길! 알렐루야!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