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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17 조회수1,048 추천수6 반대(1)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Everyone who speaks a word
against the Son of Man will be forgiven,
but the one who 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ot be forgiven.
(Lk.12,10)
 
 
제1독서 로마 4,13.16-18
복음 루카 12,8-12
 

어렸을 때에 저는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맞으면 행복하리라 생각했고, 또한 신학교에 들어간 뒤에 사제가 되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해서 좋은 결과를 보게 되면, 또한 글을 열심히 써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책을 출판하게 되면 행복에 도달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일상 삶 안에서 발견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목표치에 도달하면 그 순간에는 행복한 것 같지만 그렇게 오래 가지 않습니다.

전에 본당신부로 있을 때, 한 꼬마아이가 제 축일 날 선물로 주었던 피카츄 딱지가 생각납니다. 저에게는 정말로 필요 없는 피카츄 딱지이지만, 이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했던 것이었지요. 그래서 축일을 맞이한 제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딱지를 주려고 마음먹었지만, 차마 주지 못해서 망설이다가 결국 “신부님 축일 축하합니다.”라면서 주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뛰어 나가더군요. 이 아이만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합니다. 어떤 고통과 시련도 싹 잊어버리게 하는 아이의 모습, 그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 바로 저에게는 행복인 것입니다.

행복은 발견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득 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행복해져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을 어떤 성취에서만 찾다보니 항상 불안하고 초조해질 뿐입니다. 다른 이들은 행복한 것 같은데, 내 자신은 그렇지 못한 것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충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감각을 열어 놓고, 또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사랑의 마음으로 진정으로 소통하려 한다면 너무나 많은 행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의 마음과 그에 대한 실천이 주님을 세상에 증언하는 모습입니다. 단순히 길거리에 나가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모습만이 세상에 주님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의 실천을 통한 모습이 얼마나 더 크게 주님을 증언할 수 있게 되는지를 우리 일상 삶 안에서 쉽게 느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에 주님을 증언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늘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몇 개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문득 어렸을 때 소풍을 가서 했던 보물찾기가 떠올려 집니다. 이 보물찾기 때를 보면 항상 찾는 친구만 찾고, 찾지 못하는 친구는 늘 하나도 찾지 못합니다. 그러면 많이 찾은 친구가 찾지 못하는 친구에게 하나씩 나눠 줍니다. 그 모습이 떠올려지면서 내가 발견한 행복도 이렇게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곳곳에 행복의 바이러스가 퍼져서 모두가 주님 안에서 행복했으면 합니다.

주님을 증언하는 삶. 그래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현명한 사람이 되려거든 사리에 맞게 묻고 조심스럽게 듣고, 침착하게 대답하라. 그리고 더 할 말이 없으면 침묵하기를 배워라(라파엘로).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전에 어떤 분의 차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차 뒤 범퍼가 거의 떨어질 지경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분에게 “차 뒤 범퍼를 수리해야겠어요.”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이분께서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어떤 차든 한 번 부딪혀 주었으면 하고 있어요. 그러면 저절로 수리할 수 있잖아요.”

저는 “잘못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살짝 부딪혔다고 수리할 범퍼를 다 그분이 부담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죠.”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요. 뭐.”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종종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라는 말로 자신의 잘못이 전혀 잘못이 아닌 것처럼 여기려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대의 입장이라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억울한 상황이 되지 않나요?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 않고, 나의 이익만을 생각하다보면 늘 합리화시키기에 급급해집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를 떠올린다면 그러한 합리화에서 벗어나지 않을까요? 솔직히 남들 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행동의 주체가 될 수 없기에,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세운 올바른 의지대로 살아갈 때 모든 행동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행복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영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David Herbert Lawrence)가 했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충동을 느끼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라.”

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주님의 말씀과 뜻을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더욱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요?


제 차는 깨끗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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