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20 조회수947 추천수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0월 19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You fool, this night your life
will be demanded of you;
and the things you have prepared,
to whom will they belong?
(Lk.12,20)
 
 
 
제1독서 로마 4,20-25
복음 루카 12,13-21
 

언젠가 산책하러 동네 공원에 갔습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우산이 없었던 저는 빠른 걸음으로 비 피할 곳을 찾아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공원의 한가운데라 비를 피할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저는 비에 완전히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쏟아진 엄청난 소나기를 피하지 못하고 몸으로 다 받아낸 것이었지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나갈 걸이라는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비를 다 맞았으니 어떻게 합니까? 집에 가서 어차피 빨래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굳이 지금 빨리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을 것 같더군요. 또 비가 쏟아질 기세였지만 이미 젖은 몸, 또 다시 쏟아지는 비를 맞는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래 걷기로 생각했던 공원을 모두 돌고나서야 집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 빗방울이 떨어진다고 두려워했지만, 막상 비에 흠뻑 젖고 나니까 비가 그렇게 두렵지 않더군요. 비를 맞아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자유로워집니다. 문득 온전히 내 자신을 맡긴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늘 사랑을 주시는 주님께 흠뻑 젖어야 합니다. 흠뻑 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주님을 멀리에 계신 분, 어려운 분, 도저히 모를 분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주님께 흠뻑 젖은 사람은 주님 안에서 마음이 편해지고 삶이 자유롭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고통과 시련이 찾아와도 흠뻑 젖은 주님으로부터 얻은 힘으로 거뜬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 흠뻑 젖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이 세상의 돈이나 명예일까요? 그래서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주님께 흠뻑 젖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처럼 세상 것에 대한 욕심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최후를 맞이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늘 강조하셨던 사랑을 실천하면서, 생명과 구원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을 굳게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주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며 동시에 주님께 흠뻑 젖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주님께 흠뻑 젖으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며 살고 있을까요?

솔직히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재화를 모으면서 결국 주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 때가 너무나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최후의 순간에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세상의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온전히 내어맡겨 흠뻑 젖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평생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헤맸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이런 전화, 오랜만에 보네요.

 

도덕적인 병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이 암 선고를 받고서 이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렇게 병에 걸렸다고 해서 이 사람에게 이성적으로 화를 낼 수 있을까요? 병으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은 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화를 내기 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위로를 해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육체적인 병을 마주칠 때의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도덕적인 병에 대해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도덕적인 병들이 얼마나 만연한 세상입니까? 죄로 점점 물들어 가는 세상, 그런데 우리들은 그 죄를 짓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일관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치유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도 죄에 대한 용서를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자체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역시 하나의 병으로 생각하셨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근원적인 방법은 바로 사랑에 있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인터넷을 하다보면 섬뜩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생깁니다. 죄에 대한 비판이라고는 하지만, 이 세상에 완전히 사라져야 할 사람인 것처럼 써 놓은 글에서 과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렇게 판단하고 단죄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도적인 병에 대해서도 너그러우셨던 주님의 모습을 다시금 기억했으면 합니다.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는지도 한 번 더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따르는 우리가 될 때, 우리는 주님과 더욱 더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도 가까이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일본 사케 잔과 주전자. 어느 가게에 진열된 것을 찍었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