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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22 조회수1,133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Do you think that I have come
to establish peace on the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Lk.12,51)
 
 
제1독서 로마 6,19-23
복음 루카 12,49-53
 

아주 신심 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에게는 정말로 사랑하는 두 아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어디를 다녀오는 동안 끔찍한 사고로 아들이 목숨을 잃고 만 것입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남편 없이 이 고통을 신앙으로 이겨냈지요. 하지만 문제는 남편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신앙심이 깊기는 하지만 심장이 좋지 않아서 이 비보를 들으면 쓰러질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는 이런 말을 하지요.

“당신이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전에 친구가 제게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석 두 개를 맡겼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안 계실 때 그 친구가 와서는 그 보석을 돌려달라는 것이에요. 저는 너무나 아까워서 못 주겠더라고요. 어쩌면 좋을까요?”

남편은 아내에게 “당신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당신은 허영심 없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라고 말하고는 그 보석들을 돌려주자고 설득합니다. 그제야 아내는 말하지요.

“여보, 보석들은 돌려주었어요. 실은 이미 여기에 없답니다. 그 두 개의 귀중한 보물은 우리 두 아들이에요. 당신이 없는 사이에 하느님께서 우리 품에서 아이들을 데려가셨어요.”

우리가 놓지 못할 것이 무엇일까요? 하느님께서 다시 가져가시겠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꼭 움켜잡으려고만 하지요.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잃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서 이것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갖는 착각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늘 사랑을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뜻밖의 이야기를 하시지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는 세상의 어떤 것도 심지어 혈연으로 끈끈하게 맺어져 있는 가족 관계까지도 하느님과의 관계보다 윗자리에 올라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가족 안에서 분열을 가져오더라도 하느님께 우선순위를 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기 소유를 잃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있을 수 있고, 또한 어떤 물질적인 손해를 가져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사람은 그 순간에 하느님께 대한 원망보다는 괴로워도 내어 맡길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며, 이 믿음을 통해서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우선순위를 둘 수 있은 마음, 그래서 하느님 것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믿음. 그러한 믿음을 청해 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은 마음이 죽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것은 쉬지 않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다.


인천공항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능력을 받은 나

어제 공항을 다녀왔습니다. 성지순례를 가시는 신부님께서 공항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서 다녀왔지요. 신부님들의 짐을 싣고서 공항으로 가고 있는 중에 한 신부님께서 제 차 앞 유리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더니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공해 차량이네요. 그러면 주차요금이 절반이죠?”

사실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습니다. 솔직히 차량을 구입할 때 저공해 차량 등록을 해주신다고 했는데 그 혜택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주차요금 50%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공항에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 한 번도 그 혜택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몰랐기 때문이지요.

5년 넘게 타고 다닌 저의 차이지만 이러한 혜택을 가지고 있는 차인지를 몰랐습니다. 문득 우리 자신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능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깨닫지 못해서 ‘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창조하시면서 조치를 해놓았는데, 스스로를 깨닫지 못하고서 그저 힘들게만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무책임하게 이 땅에 내려 보내신 것이 아님을 굳게 믿으면서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주차혜택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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