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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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매일미사묵상]"열쇠를 치워 버린 사람들-Santa Marta 미사"(2015년 10월15일 목요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23 조회수672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Santa Marta 매일미사 묵상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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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제1독서: 로마서 3,21-30ㄱ

                                 화답송 : 시편 130(129),1-2.3-4.5(◎ 7ㄴㄷ) 복음: 루카 복음 11,47-54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6874&gomonth=2015-10-15&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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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Marta 미사 – 열쇠를 치워 버린 사람들


http://www.news.va/en/news/mass-at-santa-marta-those-who-take-away-the-keys


 


2015-10-15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 안의 구원이라는 거저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작은 범위”로 한정 시킴으로써 잘못 이끄는 “율법학자들”이 언제나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은 “어마어마하고 끝없는” 어떤 것인 것인데도 말입니다. 문제는 먼저 예수님 자신께서 말씀을 하시고 그리고 나서 사도 바오로와 오늘날에 이르는 전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다른 성인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 성인들 중 한 분이 아빌라의 데레사입니다. 그 날에 교회에서 이 가르멜 수녀회의 신비가-500년 전에 태어난-의 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떻게 이 여성이 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지평을 이해하는 은총을 받았는지 말했습니다. 


    10월 15일 목요일 아침, 산타마르타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독서 말씀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3,21-30a)와 루카 복음(11,47-54)의 말씀을 데레사 성녀가 사셨던 특별한 경험으로 연결시켜 말했습니다. 그녀는 감옥에 가지 않았지만 거의 구원되지 못하고 그녀를 감독했던 다른 수녀원에 보내졌습니다. 더구나 교황은 지적하기를 “이것은 역사 전체를 통해 집요하게 지속된 싸움입니다.”


교황이 언급한 역사는 두 독서 말씀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교황은 바오로 사도와 예수님 두 분께서 “약간은 화가 나셨고 짜증이 나셨고 한 분이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오로의 문제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하기를, 그 답은 사도 바오로께서 “교리를 수호했고 교리의 위대한 수호자였으며 그리고 그 짜증스러움은 교리를 인내하지 못하는 이 사람들에게서 왔습니다. 어떤 교리냐구요? “거저 주시는 구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무상으로 거저 구원하셨고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셨습니다.” 한편 “아니요, 그분께서는 저 사람만을 구원하셨어요. 이것, 이것, 이것, 그리고 이것을 하고 이런 실천들을 하고 이 계명들을 지킨 한 저 남자 또는 저 여자를 구원하셨어요.”라고 말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것은 거저 주시는 것, 하느님의 사랑은, 바오로 사도가 반대하면서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 따르면, ‘우리가 얻어낼 있는 어떤 되어 버리고 맙니다., ‘내가이걸 하면하느님이 구원할 의무가 있어.’이것이 바오로 사도가 행위로 받는 구원이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받는 구원을 이해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이유입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듣습니다. 그분이 사랑으로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음을 너무나 많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자주 들어서 그것에 익숙해져 왔습니다.” 사실 “실제로 우리는 이 하느님의 신비에 들어 갑니다. 이 사랑, 이 끝없는 사랑, 이 어마어마한 사랑의 신비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너무나 “놀라워서 우리가 어쩌면 그것을 이해하지 싶지 않는” 마음이 듭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그런 스타일의 구원을 더 좋다고 믿습니다.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물론, 선한 일을 하는 것,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들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핵심은 이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에서 오는, 거저 오는,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시는 구원에 대한 나의 답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자신이 “율법학자들에게 조금은 가혹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이유입니다. 그들에게 그분은 “강하고 매우 가혹한 말씀을 하십니다. 즉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너희가 열쇠를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황은 어떤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면서 “그들은 마치 하느님의 사랑이 작고 작고 작고 작은 것처럼 하느님의 범주를 우리 각자가 재도록 협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황은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가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직면하고 있는 싸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반대하며 물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지만 교황님, 계명이 있지 않나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한가지는 기본적으로 모든 계명을 통합하는 한가지입니다.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사랑의 마음가짐 때문에 우리는 구원의 거저 주심에 합당해 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거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오, 내가 너를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그러나 내가 그 밑에 다른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해 관계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첫째 사랑은 이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데 합당한 유일한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덧붙이신 핵심으로 이것입니다. “이 계명 안에서 다른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 그것이 선한 모든 것을 만듭니다- 그 모든 다른 것들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 원천은 사랑입니다. 그 범주는 사랑입니다. 당신이 문을 닫고 사랑의 열쇠를 버린다면 당신은 당신이 받은 거저 주신 사랑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스스로 되풀이 되는 역사입니다. 교황이 말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사랑을, 구원의 거저 주심, 교리를 보호하기 위해 박해를 받아 왔습니까. 너무나 많은 성인들이. “잔다르크”를 생각합시다. “구원을 통제하려는 싸움 – 이런 일들을 한 사람들만이 구원 된다는-은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와 함께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끝나지도 않습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가 또한 우리 안에서 하는 싸움입니다. 교황은 이렇게 말하면서 조언을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 보는 것은 유익할 수 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나를 거저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는가? 나는 내가 구원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믿는가? 그리고 내가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것을, 그리고 그분이 나를 위해 해 오신 일을 통해서라는 것을 믿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유일한 대답이 사랑이라는 것, 사랑의 계명이라는 것을 믿는가. 그리고 그 사랑의 계명은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과 모든 예언자들의 가르침들을 요약한 것이라는 것을 믿는가. 이렇게 교황은 “오늘 이 질문들을 새롭게 하기 위해 초대를 했습니다. 오로지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너무나 자비로운 이 사랑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믿을 수 있는지.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이 어머니와 같다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사랑, 위대한 지평, 한계 없이 끝없음. 이 사랑에 한계를 두는 전문가들에 의해 어리석어지지 않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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