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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24 조회수1,087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0월 24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If you do not repent,
you will all perish as they did!
(Lk.13,3)
 
 
제1독서 로마 8,1-11
복음 루카 13,1-9
 

언젠가 아는 지인들과 함께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저희 옆 테이블에 네 명의 손님이 와서 앉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이분들이 식사 전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아마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 개신교 신자이신 것 같습니다. 모두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있었고, 그 중 한 분이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정도로 약간 큰 소리로 식사 전 감사의 기도를 오랫동안 하시더군요.

이 모습을 본 제 일행 중 한 분이 “개신교 신자들은 너무 광신적인 것 같아요. 가톨릭 신자들은 그렇지 않아 다행이에요.”라고 조그맣게 제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문득 식사 전 기도 감사기도 바치는 것이 왜 광신적인 모습으로 비춰질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지요.

“저분들도 저와 똑같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단지 방법만 조금 다를 뿐이지요.”

가톨릭 신자들의 식사 전 기도는 솔직히 아주 짧지요.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이 기도를 바치는데 1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 1분도 걸리지 않는 기도를 생략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혹시 광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싫어서 생략하시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광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더라도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요? 또한 서로를 가르는 차이점만 보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지 기도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데 너무 익숙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심판자의 모습보다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해서 주님께로 향하는 회개의 모습을 갖춘 우리들을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헤로데의 생일 잔칫날, 헤로디아의 춤 값으로 세례자 요한을 죽이지요.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의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이 잔치에 있었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물론 로마 당국이 금지했던 희생 제사를 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죄도 없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데 방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예수님께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가 특별히 커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그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생각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회개라고 이야기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스스로의 잘못과 죄를 지금 당장 뉘우치고 회개해서 주님께로 향하는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그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언젠가 잘려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건 서로의 마음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이윤학).


재미있는 초보운전 표시. 운전 못한다고 판단하고 무시하는 모습 금지!!!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됩시다.

교구청에 있을 때에 어떤 건물의 준공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식순에 맞춰서 준공식을 진행하였고, 잠시 뒤에 리본을 자르는 차례가 되었습니다. 사회자는 리본을 자를 하객들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교님과 신부님들, 지역 정치인들, 건물을 짓는데 도움을 주신 은인들이 리본을 앞에 두고 일렬로 섰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고 있었던 한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공사하느라 땀 흘려 일한 사람은 하나도 없네.”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여름 내내 이 건물을 짓느라고 땀을 흘렸던 사람들은 전면에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생색을 내는 것은 언제나 땀 흘려 일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요?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묵묵히 땀 흘려 일한 많은 사람들 덕분에 아름답고 멋진 건물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 삶 안에서도 이렇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면에 나설 수 없다고 해서 의미 없는 삶이 아닙니다. 전면에 나서지 않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의미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명성이나 영예를 쫓지 않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주님께서 모두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캐오가 올라갔다는 무화과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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