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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기도의 법칙 1. 지식에서 지혜로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25 조회수923 추천수9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연중 제30주일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복음: 마르 10,46-52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 (1606), 톨레도 주교좌 성당


< 기도의 법칙 1. 지식(知識)을 벗고 지혜(智慧)를 입기 >

 

저는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살아오던 사람이었습니다. 예비 신학생 모임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나가야 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높은 사람이 되고 돈 많은 사람이 되고 예쁜 여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거라 배우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 안에서 사제가 되어야 더 행복할 거라는 또 다른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렬하던지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뿌리째 뽑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하느님이시오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라는 10권짜리 책을 5년 동안 읽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새로운 믿음이 저를 사로잡게 되었고 저는 26세 때 아버지와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신학교 시험을 치러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 생각을 꺾어준 제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던 그 새로운 믿음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제가 된 이후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작지만 큰 행복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잔 윌턴이란 사람도 26살 때까지 인생을 마구잡이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회에서 들었던 이 한 구절의 말씀이 지금까지의 그의 모든 생각을 바로잡아주었습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마태 17,20)

이후 새 삶을 살기로 한 그는 그 다음 날부터 진짜 겨자씨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서 날마다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술과 담배를 끊고 고작 1실링씩 받는 가게 점원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훗날 그는 유명한 사업가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71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작위를 부여받기도 하였습니다. 윌턴은 고백합니다.

나는 좌절할 때마다 이 겨자씨를 꺼내 보며 주님의 말씀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참조: 차동엽, ‘통하는 기도’]

 

오늘 복음에서도 예리코의 소경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 이런 말씀을 듣게 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결국 소경이 눈을 뜨는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은 많은 이들의 방해를 무릅써야만 했습니다. 그가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을 때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며 부르짖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이 당신밖에 없느냐며 꾸짖고 나무라며 조용히 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바르티매오는 그 많은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 안에 믿음이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믿음은 자신을 이기게 하고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믿음이 세상의 위협을 이기고 자신의 마음속으로부터 솟아나오는 확신을 따르게 하는 힘이라면, ‘(자아)’는 오히려 세상의 힘에 굴복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자아가 활동하는 방식은 생각을 통해서입니다. 생각의 바탕은 지식입니다. ‘지식안다는 뜻입니다. 태초에 뱀은 하와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알게 되어하느님처럼 된다고 유혹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생각을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은 자아가 만들어내는 눈가리개입니다. 오늘 바르티매오가 뜬 눈인 비단 육체적인 눈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오로의 눈에시 비늘이 떨어져나갔는데 그 비늘도 지금까지의 쌓아온 자신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창세 3,1)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하와는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창세 3,3)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말씀까지 바꾸어버리게 됩니다. 하느님은 분명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7)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다시 말해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라고 하시지 않고 먹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하와가 뱀과 이야기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져 만지지도 말라는 말까지 첨가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뱀과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조금씩 진리에서 멀어져갑니다. 그리고 뱀과 이야기한 결과는 결국 주님께서 창조하신 것에 매력을 느껴 소유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창세 3,6)

그리고 그렇게 눈이 어두워지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주어 장님이 되는 지식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창세 3,6)

뱀은 자아를 의미하고 자아는 나 자신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려거든 자신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자신이 바로 뱀인 것입니다. 그런데 뱀은 생각을 통하여 하느님의 법이 흐려지게 하고 결국에는 덮어버려 진리에 눈이 멀게 하고 세상 것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는 것 중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대부분 뱀에 지배당하는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그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춥니다.

 

그러나 지혜가 들어오면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들을 뿌리째 흔들어놓습니다. ‘지식()’안다는 뜻인데 지혜()’ ‘안다고 하는 태양()’이 받치고 있는 형태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습니다. 하느님의 법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심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양심의 법이라고도 하고 진리라고도 합니다.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예레 31,33)

다시 말하지만 그 양심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 바로 뱀입니다. 뱀이 생각의 작용을 통해서 그런 것쯤은 어겨도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되고 죄를 지으면 또 생각으로 그것들을 합리화합니다. 신창원은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선생님으로부터 모욕을 당해 악마가 자기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그가 범죄 하는 것들을 합리화하는 것인데 이는 그의 안에 있는 뱀이 하는 일입니다. 결국 뱀에 지배받는 이들의 특징이 남의 탓을 하고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이 굳어지면 양심이 가려져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빛()이 그에게 비추게 되면 마치 진흙탕 속에 숨어 있던 연꽃의 씨가 싹을 틔워 진흙을 뚫고 물 위로 올라와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참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 빛이 바로 성령의 작용인데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 법을 따름이 참 행복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지식들은 허물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바르티매오가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생각의 겉옷을 벗어던지고 예수님께 갔다는 상징적인 표현과 같습니다(마르 10,50 참조). 우리는 지금까지의 생각을 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시는 발밑에 깔고 그분이 주시는 겉옷을 입어야합니다. 이런 모든 일들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박해당하고 모든 것을 잃고 목숨까지 잃어도 자신들의 믿음을 굽힐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빈 라덴과 같은 사람들도 신념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지만 그 결과는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자신까지 숨어서 살아야하는 불안한 처지가 되어버립니다. 나무는 열매로 아는 법입니다. 주님의 법을 어기면 양심에서 심판을 내려 절대 참 기쁨이나 평화가 찾아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심어주신 법을 믿음으로 지킨다면 오늘 바르티매오처럼 그리스도께 칭찬을 받아 참 기쁨과 평화가 흘러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믿음이 생기게 하기 위해 흘러 들어와야 하는 태양빛()을 받는 시간을 기도라고 부릅니다. 빛은 빛을 가진 이에게서 흘러들어옵니다. 그것이 성체가 되었건 성경이 되었건 영성 강의나 대화가 되었건 영성 서적이 되었건 아니면 마음의 직접적인 비추임이건 간에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힘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그 빛을 받기 위해서는 그 빛을 막는 차양막인 자신의 고집과 생각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기도를 하건 강의를 듣건 다 좋지만 자신의 상상 속에서 재해석해낸다면 그것 또한 나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첫 번째 조건은 생각을 멈추는 일’, 뱀과의 대화를 중단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 짧은 기도문을 반복하는 것도 좋고 한 물체를 오래 쳐다보는 것도 좋으며 소리에 집중하는 것도 좋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도 좋습니다. 내 안의 소리가 멈추어야 그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눈을 감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그러면 마치 꿈처럼 생각이 환상을 만들어 내서 그 속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뱀을 바라보며 동시에 하느님을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생각을 멈추고 그분을 바라보려 하는 노력부터 이미 참 기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께서 오시는 통로에 붙어있으십시오. 저는 처음에 기적의 패에 대한 믿음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땅에 묻었더니 그 땅의 고집 부리던 주인이 떠나가 버렸다거나 병이 나았다는 식의 말들은 약간 기복신앙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차에 부끄럽지 않게 기적의 패를 넣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한 신부님이 기적의 패 덕분으로 죽음의 위험에서 살아났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밤에 운전하다가 다리 밑으로 차가 거꾸로 떨어졌는데 기적적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튕겨져 나와 자신도 모르게 사제관에 걸어가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물론 경찰들이 다리 밑의 차의 시신을 찾느라고 고생하고 있을 때 그분은 집에서 잠을 주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저도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믿음이 생기니 하는 행위가 부끄럽지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이 저에게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지식이 그 짧은 순간에 송두리째 뽑혔습니다. 우리는 생각이나 지식이 다 좋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을 잠시라도 접어놓는 순간부터 기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뱀을 바라볼 때는 생각을 하게 되고 하느님을 바라볼 때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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