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25 조회수900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0월 25일 연중 제30주일
 
Jesus said to him in reply,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The blind man replied to him,
"Master, I want to see."
(Mk.10,51-52)
 
 
제1독서 예레 31,7-9
제2독서 히브 5,1-6
복음 마르 10,46ㄴ-52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네덜란드의 어느 지방에는 도로에 신호등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그뿐이 아니라 표지판도 없고, 심지어 중앙선도 없습니다. ‘워낙 시골 지역이라서 그런 것이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다른 웬만한 지방보다도 차와 자전거가 훨씬 넘쳐나는 지역입니다. 그런데도 교통의 흐름이 너무나 좋고, 교통사고율도 현저하게 낮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신호등, 표지판, 중앙선 등 교통을 위한 표시들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가 서로 주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쁘지 않습니다. 차가 사람을 발견하면 먼저 가라고 하고, 사람이 차를 발견하면 먼저 가라면서 서로 양보합니다. 그러다보니 사고도 없고, 교통의 흐름도 원활한 것이지요.

사실 이 지방 역시 처음에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교통 표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통 표시를 많이 할수록 교통사고가 더 많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연구를 해보니 이 표시만을 믿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렇게 모두 없애 버린 것이었지요.

우리나라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사실 며칠 전에 길을 건너다가 큰 일이 날 뻔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멀리서 보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힘차게 뛰었습니다. 신호등이 10초 남았다는 표시를 보고서 횡단보도에 들어섰는데, 다 건너기 전에 신호등이 빨간색을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몇 걸음이면 횡단보도를 건너니까 뛰는 것을 멈추고 걸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한 차가 경적을 크게 울리며 제 옆에 선 것입니다. 그리고 운전수는 창문을 열고 욕을 해댑니다.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제가 신호를 지키지 않은 것이니 뭐라 할 수는 없었지만, 5초도 참지 못하는 양보와 배려 없는 모습에 언짢은 기분이 가시지 않더군요.

양보와 배려. 오늘 한 번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다른 이를 위해 1초도 참지 못하는 마음이 아니라, 기꺼이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임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거지가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거지의 이름뿐 아니라 어떤 가문까지 명시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한 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길에서 구걸하는 사람의 이름을 아십니까? 그런데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바르티매오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전승에 의하면 그는 큰 영화를 누리던 가문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이었는지 집안이 몰락했고, 그는 눈까지 멀게 된 것이었지요. 이 모습에 사람들은 이 바르티매오가 하느님의 벌을 받은 큰 죄인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래서 죄인이 감히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외치고 있으니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큰 소리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칩니다. 사람들의 만류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몰락으로 이끈 하느님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크게 외칠 뿐이었습니다. 그의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이야기하시면서 치유를 해주시지요.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면서 주님 곁으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어쩌면 지금 양보와 배려를 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의 그러한 공격을 받으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바르티메오를 보면서 믿음은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과 단죄로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아닌, 그 누구도 구원에 제외될 수 없음을 기억하면서 함께 주님 앞으로 갈 수 있도록 양보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됩니다.

나의 모습과 주님을 향한 믿음은 과연 어떠할까요? 많은 묵상을 할 수 있게 하는 오늘의 복음입니다.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크리스티안 바너드).


어제 강의 잘 마쳤습니다.

 

성공시대

옛날에 "성공시대"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을 다룬 프로그램으로 꽤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성공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것을 해서 성공했고, 저것을 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실패했다는 이야기, 완전히 바닥을 쳐서 죽을 생각까지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그 실패에 그냥 주저앉아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서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이지요.

이 프로그램을 떠올리면서 생각나는 격언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라는 것입니다. 실패 없이는 성공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정말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위에 힘든 분들이 많습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다가오는 실패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뻔한 말일 수도 있지만, 이제까지 성공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실패를 했으니 성공의 길에 조금 더 가까이에 있다고 말입니다.



실내에서도 잘 자랍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