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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묵상] 인간의 고통을 못견뎌하시는 하느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26 조회수948 추천수16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인간의 고통을 못견뎌하시는 하느님


 

나이를 잊고 젊은 형제들과 신나게 축구를 했습니다. 운동이란 것이 참 묘해서 한번 시작하면 그간 잊고 있었던 내면의 승부욕이 작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음만 앞서지 몸은 따라주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의 체력이나 발재간을 못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그렇다고 또 지기는 죽어도 싫습니다. 당연히 무리를 하게 됩니다.


 

뒷전에서 무리하지 않고 슬슬 수비만 했으면 별 탈 없었을 텐데...어떻게 해서든 한골을 넣어보겠다고 강력한 무 회전 코너킥을 머리로 몇 번 받았더니 그 충격에 머리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가 끝나고 나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강력한 코너킥의 충격으로 머리가 좌우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때는 누가 저를 부르면 고개만 돌려서 바라보면 그만이었는데, 고개가 안돌아가니 로봇처럼 몸 전체를 돌려서 방향을 틀어야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에 사람들은 웃으면서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그러니 나이를 생각하셔서 좀 살살 하시지 않고!”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련한 여인에 비교하니 제 불편함은 ‘새 발의 피’도 아니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에 따르면 그 여인은 18년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허리가 90도로 휘어져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언젠가 시골길을 걷다가 만난 한 할머님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평생토록 허리 한번 펼 틈 없이 논과 밭에서 고생하신 결과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송구스럽고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할머니께서 길을 걸어가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보였습니다. 허리가 90도 휘다보니 당연히 시선이 땅으로 향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애써 고개를 쳐드시는데 그것 역시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허리가 기역자로 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산이나 들, 태양이나 바다가 아니라 땅 바닥입니다. 시야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세계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절망감에 사로잡힙니다.


 

허리 굽은 여인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오늘따라 특별해보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자신을 고쳐달라고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 옷자락을 붙잡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 눈에 띄는 유별난 행동을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가르치시던 회당 한 구석에 힘겹게 앉아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는 즉시 마음 깊은 곳에서 강한 연민의 정을 느끼셨습니다. 굽은 허리로 살아온 여인의 18년 동안의 고통을 헤아리시며 깊은 측은지심을 느끼셨습니다. 아무런 특별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 여인을 당신 가까이 부르십니다. 그녀의 허리에 당신 사랑의 손을 얹으십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땅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바닥에서 헤매지 않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실망감과 패배감을 곱씹지 않습니다. 활짝 편 허리를 바탕으로 큰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똑바로 서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미합니다. 당당하게 활보하면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만방에 알립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똑바로 서기를 바라십니다.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온전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다른 어떤 것, 그 누구도 아닌 예수님만이 우리 삶의 중심이요 기초임을 기억하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한 인간 존재의 고통을 못견뎌하시는 우리의 예수님이십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은 곧 예수님의 노선과 정확하게 일치됩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아무리 오래되고 깊은 상처라 할지라도 깔끔하게 치유시켜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아무리 망가지고 허물어진 우리라 할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원상복귀, 혹은 완벽한 ‘리모델링’을 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고통 속에서 선을 이끌어내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때로 우리가 겪게 되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면서 치유의 길에 동반해주심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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