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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26 조회수1,074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0월 26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Woman, you are set free of your infirmity.”
He laid his hands on her,
and she at once stood up straight
and glorified God.
(Lk.13,12-13)
 
 
제1독서 로마 8,12-17
복음 루카 13,10-17
 

스스로 늙었다고 소심해진 자신의 애인을 위해서 가명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는 스토커처럼 애인을 너무나도 잘 아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있었고, 마치 숭배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의 표현이 쓰여 있었습니다. 한통, 한통 그 편지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애인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소심한 마음이 없어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도 생겨납니다. 그런데 가명으로 편지를 보낸 애인 역시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가명으로 편지를 보내다보니 보다 더 애인을 자세히 바라봐야 했고, 그렇게 바라보다 보니 애인의 새로운 모습들을 계속해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의 내용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가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다른 이의 도움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긴 우리는 내가 모르던 장점을 누군가로부터 듣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모르던 단점을 듣게 되면 어떻습니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 단점을 거부하려는 이유를 대려고만 합니다.

내가 모르던 장단점을 가장 잘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라 바로 남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하는 것은 단점을 이야기해줌으로써 생겨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점을 들었을 때에는 우선 거부하고 보려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장점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해주면 ‘내가 정말로 그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 자신도 몰랐던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나 세리 등, 당시의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평가 받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안식일이라고 해서 그들을 피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하게 사랑으로 다가가셨고,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이라는 죄책감으로 나락에 빠진 사람들에게 힘을 내어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어떠했나요? 그들에게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했던 것이지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당시의 종교지도자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키워주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하고 있었을까요?

부정적으로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솔직히 단점을 이야기해주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사람의 발전을 위해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단점부터 이야기하면 과연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자기 자신도 그런 말을 듣는 것에 힘들어하면서 왜 남에게는 쉽게 말하려 할까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단죄하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주님을 따르는 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 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에서).


치유의 주님

 

버려야 할 것들.

모택동의 어록 가운데 ‘3무’가 있습니다. 즉, 큰일을 하려면 이름, 돈, 나이라는 세 가지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지요.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들, 돈을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추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 나이가 많아서 아무것도 못한다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들. 정말로 큰일을 하려면 없어야 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버려야 할 것들이 정말로 많은 것 같습니다. 모택동이 말했던 이름, 돈, 나이도 그렇지만 다른 것들도 참 많습니다. 다른 이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하고, 또한 욕심을 버려서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인 마음 역시 버려야 할 것입니다. 편하고 쉬운 것만 가지려는 안일한 마음 역시 우리가 비워야 할 것이 아닐까요?

참 많은 것들을 버리고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이라는 것으로 그 빈 자리를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 안에서 비울 것이 없어서 행복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내가 버리고 비워야 할 것들을 한 번 찾아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버려 보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것들도 버려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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