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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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매일 복음 묵상- 송영진 모세 신부-( † 연중 제30주간 金曜日*수종을 앓는 이를 안식일에 고치시다. 』
작성자김동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29 조회수735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연중 제30주간 금요일>(2015. 10. 30. 금)(루카 14,1-6)


 

<수종을 앓는 이를 안식일에 고치시다.>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루카 14,2-6)>

 

이 이야기는 지난 10월 26일의 복음 말씀이었던,
루카복음 13장 10절-17절, '등 굽은 여자를 안식일에 고쳐 주시다.'와 거의 같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셨다는 점이 같고,
'안식일일지라도' 병자를 고쳐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같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라는 질문의 정답은
"합당하다."입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잠자코 있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침묵을 지킨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침묵에는 '적대감'이 들어 있습니다.

 

등 굽은 여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를 보면, 회당장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루카 13,14)."
(그 회당장은 예수님께 직접 말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회당장의 말은, "안식일은 일하는 날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에는 절대로, 무조건,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확고부동한 '신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병자를 고쳐 주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병자 치료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목숨이 위험한 응급 환자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안식일에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된 '수종을 앓는 이'는 응급 환자가 아닙니다.
('등 굽은 여자'도 응급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응급 환자가 아니더라도 병자의 병을 고쳐 주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요일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이다."입니다.
여기서 '안식일일지라도' 라는 말은
"안식일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안식일이든지 아니든지 항상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안식일 율법에 관한 논쟁을 읽을 때마다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대체 왜 그렇게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

 

어떻든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지상 최고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안식일뿐만 아니라 '할례'도 그런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그들은 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하느님도, 하느님의 뜻도, 계명과 율법의 근본정신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냥 자기들끼리 그렇게 살았다면 그들만의 문제로 그쳤을 텐데,
백성들에게 자기들의 사상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하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자기들의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서 하느님을 죽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념과 사상에 사로잡혀서
정말로 중요한 시민의 인권, 자유, 정의, 행복 등을 모두 무시하거나
짓밟는 일이 자주 생긴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민주주의보다, 또 헌법보다 더 위에 모시고 사는 자들,
그런 자들은 현대판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에는 그런 모습이 없을까? 많습니다.
지난 8월 20일의 매일미사 책에 있는 '오늘의 묵상'이 좋은 예입니다.
그 글을 보면, 판관 입타가 잘못된 서원을 하는 바람에 딸을 죽인 일에 대해서
"한 번 주님께 서원한 것은 깨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이야기이다."
라고 설명해 놓았는데,
이것은, 잘못되고 무효인 서원이라도 한 번 서원을 했다면,
그것을 깨면 안 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어리석은 설명이고,
이것도 일종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판관 입타의 서원은 그 자체로 무효이고,
또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남의 목숨을 해쳤다는 점에서
살인죄를 지은 일이기도 합니다.
입타가 함부로 서원한 일 자체도 죄가 되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셨다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 것도 죄가 되고,
잘못된 서원을 지키려고 죄 없는 딸을 죽인 것도 죄가 됩니다.
그는 이중 삼중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입타가 서원을 충실하게 지켰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을 죽인 바리사이들과 다를 것이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른 예를 들면, 순종이 있습니다.
'순종'은 신앙인의 성덕이고 미덕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순종만 강조하면서,
장상이 잘못된 지시를 하더라도 일단 복종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바리사이들 같은 자들입니다.
만일에 장상이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잘못된 지시를 한다면,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순종이라는 덕이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더 위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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