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모든 성인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1 조회수869 추천수12 반대(0)

오늘은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왜 그분들을 기억하는 것일까요? 그분들이 행복했기 때문일까요? 그분들이 하느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때문일까요? 저는 그분들의 삶이 우리가 보기에 행복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때문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주어진 길을 충실하게 걸어갔고, 감사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채우는 행복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1982126일은 설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혜화동 신학교엘 갔었습니다. 신학교에서 합격자 발표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합격자 발표를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직접 학교로 가야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신학교 학사 건물 현관에 붓으로 합격자들의 이름을 적은 대자보가 붙어있었습니다. 합격자 명단 중에 저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무척 기뻤습니다. 사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고, 배정을 받았습니다. 저의 실력으로, 저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은 것은 신학교 합격이 처음입니다.

 

신학교에 합격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심리학, 철학, 신학, 성서를 배워야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왔고, 10년 만에 신학교 입학의 최종 목적지인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모든 것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기숙사에서 단체생활을 한 것도, 어려운 시험공부를 한 것도, 석사학위를 마친 것도 모두 사제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좌 신부의 생활이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동창 신부님들 중에는 엄한 본당 신부님을 만나서 힘들어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도 한 본당에서 주임신부님을 3번 만나기도 했습니다. 처음 주임신부님은 제게 2층을 쓰라고 해서, 짐을 2층으로 옮겼습니다. 10개월 후에 새로이 주임신부님이 오셨는데 이번에는 제게 1층을 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짐을 몽땅 정리해서 1층으로 옮겼습니다. 10개월 후에 새로이 또 주임 신부님이 바뀌셨습니다. 저는 이제 본당을 옮기려면 2달 남짓 남았습니다. 하지만 신부님께서는 1층을 쓰시겠다고 하셨고, 저는 다시금 2층으로 짐을 옮겼습니다. 덕분에 짐 정리는 확실하게 했지만, 사실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본당 신부가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 본당신부로 발령을 받아서 갔던 적성성당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신자 수도 적었고, 헌금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신자들과 미사를 하는데 5명이 나왔습니다. 주일 헌금도 19만 원 정도 걷혔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지도 않았습니다. 본당의 재정을 걱정해야 했고, 신자들의 화합을 위해서 사목을 해야 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사목을 해서 교구청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안정되고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교구청에서의 생활은 제게는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교육 담당 업무를 보았기 때문에 2시간가량의 강의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매일 출퇴근을 해야 했습니다. 교구청 미사에서는 초를 켜고 복사를 서기도 했습니다. 지구와 본당을 찾아가서 강의를 하기도 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주교님께 부탁을 해서, 외국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외국의 생활은 정말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지내게 되니, 자유로울 것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외국의 문화를 맛볼 수 있기에 많은 기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생활도 저를 행복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겨울은 지독하게 추웠고, 말은 통하지 않으니 불편했고, 특히 사람을 좋아하는 저는 외로웠습니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들이 외국에서는 찾기 힘들었고,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행복은 제가 원하는 것을 채워서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행복은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감사하며 지낼 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행복은 마치 길과 같아서 내가 걸어가는 순간이 바로 행복이었습니다. 길은 가지 않으면 풀이 돋아나고, 없어지게 됩니다. 길은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오솔길이, 시골길이 되고, 차량이 다니는 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있을 때도, 보좌신부로 있을 때도, 본당신부가 되어서도, 교구청에 있을 때도, 외국에서 지낼 때도 그랬습니다. 제가 감사하면 감사드릴 일들이 생겼고, 제가 사랑하면 사랑받을 일들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해하니, 남들도 저를 이해 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나라는 어느 특정한 시간과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나라는 지금 내가 감사하면, 지금 내가 사랑하면 바로 그곳이 하느님나라였습니다. 행복도 그렇습니다. 원하는 것들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이 행복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참된 행복을 이야기 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이런 삶은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삶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