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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2 조회수1,571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1월 2일 위령의 날 둘째 미사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Mt.11,28)
 

제1독서 지혜 3,1-9
제2독서 로마 5,17-21
복음 마태 11,25-30
 

어느 연구소에서 ‘약물 효과의 연구’라는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먼저 시험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부류는 누구나 풀기 쉬운 시험지를, 다른 부류는 웬만해서는 도저히 풀기 어려운 시험지를 주고 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채점을 한 뒤에 푼 시험지를 참가자에게 돌려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점수를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사실 이들이 받은 점수는 모두 우수합니다. 정답에 상관없이 무조건 좋은 성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른 시험을 본다고 하면서 약을 복용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하나의 약은 뇌를 자극해서 지적 활동을 촉진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뇌의 활동을 지연시켜서 지적 작업을 방해하는 약이라고 설명해주지요. 그리고 어떤 약을 복용할 지에 대한 선택은 참가자의 몫이라고 합니다. 과연 참가자들은 어떤 약을 선택했을까요?

이 실험 결과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지적 활동을 방해하는 약을 선택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먼저의 시험에서 단지 운이 좋아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시험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적이 나빴을 경우를 대비해서 핑계를 대기 위해 지적 활동을 방해하는 약을 선택한 것입니다.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는데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핑계 거리를 만들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는 실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핑계 거리를 얼마나 많이 만들고 있습니까?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라면 부정적인 행동까지 하면서도 핑계 거리를 만드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벗어나 진실로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늘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죽은 모든 이,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이지요. 그러나 동시에 언젠가 이 세상의 삶을 모두 마치고 주님 앞에 돌아갈 우리 자신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앞에 선 내 자신은 과연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혹시 주님 앞에서도 자신의 합리화를 위한 핑계거리를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 앞에서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핑계 거리를 만들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면서 충실히 이 세상을 살아서 기쁜 마음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강의를 듣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지금부터 1분이 지날 때마다 여러분의 나이는 10살 씩 더 해집니다. 제가 1분이 지날 때마다 여러분들에게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물으면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1분이 지날 때마다 질문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5번의 질문의 시간을 가진 뒤에 강사는 “이제 여러분은 모두 죽었습니다.”라고 하면서, 이제 마지막 순간에 무엇이 남는지를 생각해보라고 하더군요.

여러분은 무엇이 남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의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의 삶이니까 남을 것이 없게 되더군요.

죽음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삶을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를....

죽음은 인생의 알곡을 가려내고, 굴곡된 시선을 바로잡는다(타키투스).


위령의 날입니다.

 

꿈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전교에서 1등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이 아이의 부모는 1등하는 자녀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만나면 자식 자랑하는데 열을 올리곤 했지요.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같은 반에 다니고 있으며 항상 꼴찌를 도맡아 하는 학생의 부모가 있었습니다. 자기 자녀가 너무나 부끄러웠고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요.

집에 와서 꼴찌 하는 자녀에게 “너도 1등하는 애만큼은 아니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부끄러워서 동네를 못나가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엄마, 우리 반 1등은 정말로 공부를 잘해. 그런데 나는 이 친구가 전혀 부럽지 않아. 글쎄 커서 되고 싶은 게 없대. 나는 얼마나 다행이야. 나는 요리사라는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꿈이 없는 1등과 꿈이 있는 꼴등. 누가 더 행복할까요? 그리고 누구의 부모가 더 자랑스러워해야 할까요? 또 한 가지, 하늘 나라에 대한 꿈은 가지고 계신가요? 이 꿈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은 더욱 더 기쁘고 힘차게 살 것입니다.



많이 추워진 요즘. 동태찌개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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