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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행복하여라, 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마태5,1-3)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2 조회수936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5111/주일복음말씀묵상(1)/ 행복하여라, 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마태5,1-3)

 

<이번 주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이다!

오늘 복음말씀으로 이 말씀을 인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성경에는 성인이라는 말씀과 성인 숭배의 사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가르침은 신약의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났다!

왜 성경에 없는 것들을 교리로 제정하여 가르치는 것일까?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공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더 많은 공덕이 성인들에 의해 추가로 보충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성경에 없는 이러한 것들을 교리로 정했을까?>

 

 

마태5,1-2절은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가르치셨다. 여기서 은 마태오복음에서 특히 하느님이 가까이 계신 장소이며 하느님의 계시의 장소이다(마태14,23; 15,29; 17,1;28,16). “앉다는 가르치는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23,2).

 

산상설교는 무리에게 겨냥한 것이다(7,28). 무리에게 말하는 것은 동시에 전체 이스라엘에게 말하는 셈이다(4,25).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그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겨냥한 것이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뽑혀 나온 새 하느님의 백성이다(21,43). 새 하느님 백성들은 이미 제자들 안에서 발아한 모습으로 현재(顯在)해 있다(28,16, 19, 20).

 

산상설교는 침입해 들어오는 하느님 나라(4,17)에 직면하여, 요청되며 가능하게 되는 태도를 요구한다. 이러한 태도는 오직 예수의 부르심에 힘입어서 그리고 그와 연합하여 따름으로서만 실현된다. 산상설교의 맨 처음에 아홉 가지 축복 선언이 나온다(3-11). 이 축복 선언은 듣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 곧 하느님의 새 세계에 참여를 약속한다. 이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이 임금으로 다스리시는 왕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마태오복음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라고 하지 않고, 한결같이 하늘나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이 임금으로 다스리심에 대해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의 특징은 그 다스림이 아주 가까웠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중요하고 결정적으로 새로운 것은 예수께서 하느님이 이렇게 임금으로 다스리시는 것을 더 이상 장래의 일로만 여겨 기다리시지 않고, 이미 벌써, 곧 예수님 자신의 말과 행위 가운데서, 그분의 존재 가운데서, 그분의 인격 가운데서 시작되고 있다고 보신 사실이다(루카11,20; 마태11,1-6; 13,44-46).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바, 선물하시고 요구하시는 바를 철저히 진지하게 들음으로써,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다스리심에 복종하느냐 하는 데 모든 것이 달리게 되었다.

 

예수님 안에서 사람의 아들, 곧 인자가 이미 나타나셨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끝이 정확히 언제냐를 물을 필요가 없다. 이 세상은 예수님 안에서, 곧 아직 세상이 돌아가는데도, 이미 종말에 이르렀다. 이 종말, 곧 새 세상의 시작은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게 나타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수님 안에서 이미 현재가 되었고(루카17,20-21), 벌써’, 그러나 아직은 아닌이때를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이 구원 선언은 하늘나라, 곧 하느님의 새 세계에 참여를 약속함과 동시에 여기에는 제자들의 자세나 태도를 통해서 이 약속에 상응하라고 하는 절박한 요구가 내포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스라엘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가난이 그들 주변의 몰인정한 소유욕의 결과로 나타날 때, 하느님은 옛날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특별한 변호자였다. 그들이 곤궁 가운데서 그들의 소망을 전적으로 하느님께 두고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그들의 삶의 충족을 기대하도록 점점 더 강요되는 이상, 그들은 그들의 편에서 특별히 하느님과 강렬하고 특별한 관계에 들어간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가난한 이들의 경건성이라는 독특한 사상이 발전했다(시편37; 34,19; 69,33-34; 이사57,15; 61,1-2). 예수님께서는 행복선언의 첫째 항에서 이런 종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이 첫 항목은 말하자면 전체 행복 선언의 제목과 같다. 4-10절에서, 특히 4-6절에서 이러한 가난한 사람이 고려되고 있다

 

5,3절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마음은 원문에 따르면 사람의 영을 가리킨다! 많은 믿는 이들이 사람의 영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가톨릭교회는 마음과 영의 차이를 보지 못했다. 어떤 영적인 책에서도 이의 정확한 구별을 하지 못하며, 그러므로 영적이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3절의 마음은 사람의 영, 곧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 우리가 하느님과 접촉하고 영적인 것들을 깨닫게 해주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로 번역되어야만 한다! 하늘나라는 먼저 우리 사람의 영과 관계된다!

<이 부분의 충분한 이해를 위해서는 http://cafe.daum.net/yoondaniel '영적인 성장과 영적인 사람에 대한 연구를 참고하실 것!>

영 안에서 가난한 것은 가난한 영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은 결코 가난할 수가 없다. 가난한 영을 갖는다는 것은 가련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서 가난하다면 복이 있다! 영 안에서 가난한 것은 우리의 영 안에서, 곧 우리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 이제까지 붙들고 있었던 우리의 옛사람에 속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이제 온전히 성령께서 그 빈곳을 채워달라는 다급한 소망이다!

 

주님, 저는 지금까지 내 힘으로만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나의 모든 것이 결핍이라는 중병에 걸렸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내 힘으로는 당치 않았음을 이제 깨달았나이다. 나는 나의 구주이신 주님이 필요합니다. 당신으로 온전히 채우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마치 너무나 배고픈 거지처럼 오직 그분만을 갈망하고 내 영 안에 살아계신 성령만을 주목하는, 다시 말하면, 내 영의 배고픔으로 음식이신 그분을 먹어야만 이 배고픔을 해소할 수 있는, 그러므로 지금은 부요함이 결핍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늘나라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에 가득 채워져 있는 모든 옛것들을 우리의 영에서 비워야 한다. 오늘날 거의 모든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이외의 어떤 것으로 자기 영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생명과 영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법과 교리와 관습으로 믿는 이들의 영을 가득 채웠다고 말할 수 있다.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웠느니라고 전파했을 때(4,17), 많은 종교인들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이는 그들의 영이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음식이 제공되었지만, 그들의 그릇은 이미 유대교의 율법과 교리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분의 말씀을 담을 여지가 없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3절에 있는 술어의 시제에 주의하라. 그것은 미래시재가 아니고 현재시재이다. 곧 이 구절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 되리라고 말하지 않고, “하늘나라는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한다. 당신이 당신의 존재의 깊은 곳, 곧 당신의 영을 열고 당신 자신을 내려놓고 당신의 영을 비울 때, 생명주는 영이신 왕은 당신의 회개한 생각의 관문을 통하여 그의 왕국(하늘나라, kingdom of heavens)과 함께 당신의 왕이 되시기 위해 당신의 영 안으로 들어오실 것이다. 그 때로부터 왕국은 당신 안에 있으며, 하늘나라는 당신의 것이다. 이것이 신약에 따른 구원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이것을 놓쳤다! 당신이 주 예수를 영접했을 때, 당신은 어떤 종류의 다스림이 당신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는가?

이 다스림이 왕국의 통치이다!

우리에게는 단지 구주와 생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왕이 있다! 이 왕은 우리의 영 안으로부터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신다! 알렐루야! 우리는 영 안에서 그분을 영접했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우리의 것이다! “하늘나라는 그들의 것이다.”라는 말씀이 현재 시제이므로, 하늘나라가 바로 우리의 것임을 입증한다. 우리는 얼마나 축복된 자들인가! 알렐루야!

 

만일 우리가 영 안에서 가난하여, 그분으로 인하여 배고파 질만큼 그분을 갈망한다면, 하늘나라는 우리의 것이다! 이 한 구절이 백 마디의 메시지보다 낫다! 할렐루야! ! 하늘나라가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복되고 행복한 자들이다. 우리가 영 안에서 복되고 행복한 것은 하늘나라가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알렐루야! 아멘.

 

<마태5,4-12절까지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http://cafe.daum.net/yoondaniel 주일복음말씀묵상(2)’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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