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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느님이 사람 되시고, 사람이 하느님이 되시고! 알렐루야!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3 조회수67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111/주일복음말씀묵상(2독서)/

하느님이 사람 되시고, 사람이 하느님이 되시고! 알렐루야!(1요한3,1-3)

 

 

<어느 일간지에서 대구대교구 사제단들이 사제답게 섬기고 봉사하겠습니다.’는 운동을 113일 선포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환영하고 감사드릴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선언이란 처음부터 지극히 당연히 그렇게 생활했어야하는 당연한 일을 가지고, 이제부터는 기본에 충실하며 정신을 차리고 살겠다는 이상한선언 같다는 복잡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 시대 교회의 일치를 불가능하게 하는 많은 갈등의 요인들은 그대로 둔 채, ‘나 만이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많은 갈등의 불씨를 숨긴 소극적인 미봉책이라고도 생각했다.

 

사실 그러한 선언으로는 별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와 믿는 이들이 가톨릭교회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모면하기 위한 언론과 여론을 위한 부득이한 자구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금의 문제들은 그것보다는 훨씬 심각하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쇄신되어야만 한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당신의 혼 생명(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혼 생명을 잃을 것이요(마태16,25 원문 참조).”라고 말씀하셨다.

 

당신과 교회가 쇄신되기 위해서는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쳐야만 한다! 또한 초대교회 사도들의 건강한 가르침으로 돌아가겠다.”고 외쳐야만 한다(요한6,63).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신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환영해야할 이 선포식이 자칫 교회의 문제들을 오히려 숨기고 안심시키는 미봉책이 되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도 된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빛과 은총이 임하시어, 주님의 빛 속에서 우리 자신과 교회의 나상(裸像)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시며, 회개와 통곡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멘!>

 

1요한3,1절은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228절부터 33절까지의 부분에 포함된다. 이 부분의 말씀은 하느님의 자녀들의 의로운 생활에 관한 것이다!

 

3,1절에서 요한 사도는 신성한 출생과 낳으신 아버지를 언급한다. 229절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암시되는데, 특히 아버지가 언급된다. 1요한2,29절은 그분께서 의로우신 분이시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신성한 생명의 근원이시며 이 생명으로 우리를 낳으신 분이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분이 그분의 아들을 보내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생명을 얻어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심으로써 나타났다(요한3,16; 1,12-13).

 

그분의 아들을 보내심은 우리를 낳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은 낳는 사랑이며, 특별히 아버지 안에 있는 사랑이다. 3,1절의 자녀들이라는 단어는 2,29절에 있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자와 같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인 아버지에게서 나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생명에 참여하여 삼위일체 하느님을 표현한다!

 

요한은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신성한 생명에 의한 비밀스런 출생에 의해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알지 못한다. 세상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거듭났다는 것을 모른다. 세상은 하느님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를 모른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므로 우리의 신성한 출생을 모른다.

 

3,2절은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그분이 나타나실 때에 생명의 성숙 안에서 그분처럼 될 것이다. 그분처럼 되는 것이 장래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놀라운 축복이 있는 빛나는 장래가 있음을 가리킨다!

 

우리는 신성한 본성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신성한 모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는 것은 이미 큰 축복이요 누림이다. 그러나 하느님처럼 되어 그분의 모양을 나타내는 것은 더욱 놀라운 축복과 누림이 될 것이다. 알렐루야!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대명사 그분은 장래 나타나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심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신성한 삼위일체이심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삼위일체 하느님이 나타나실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볼 때 삼위일체 하느님을 볼 것이며, 우리가 그분처럼 될 때 삼위일체 하느님처럼 될 것이다.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그분을 봄으로써 우리가 그분의 모양을 반사하리라는 뜻이다(2코린3,18).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처럼 되게 할 것이다!

우리의 장래는 우리가 어떻게 될지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이라는 말로 암시된다. 우리가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신성한 비밀이다. 하느님이 사람 되시고, 사람이 하느님 되시는 놀라운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알렐루야!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은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그분의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사람을 그분의 어떠하심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 자신을 사람과 하나되게 하시고, 사람을 그분과 하나되게 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분의 표현을 확대하고 확장하여 하느님의 모든 신성한 속성들을 사람의 미덕 안에서(in human nature) 표현하는 것이다! 알렐루야!

 

2절은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놀라운 장래가 있음을 말한다. 어떤 믿는 이들은 그들에게 장래가 없다고 반신반의 한다. 말씀을 먹지 못하므로 그런 사람은 교회도 나가고, 점집이나 무당에게도 간다. 그러나 그들에게 찬란한 축복이 있는 놀라운 장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비밀이기 때문에 놀라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우리의 장래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것이 놀라운 것이 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아들이 나타나실 때에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처럼 될 것임을 안다!

 

3,3절은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한 희망은 주님처럼 되는 소망이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양을 나타내는 소망이다. 우리는 그분처럼 될 것을 소망한다. 3절은 우리가 이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한다고 말한다.

 

228절부터 324절까지의 문맥에 의하면,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의를 실행하는 것이며(3,7; 2,29), 의로운 분이신 의로우신 하느님(1,9)의 표현인 의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불의한 흠도 없이 순수하게 되는 것이며 심지어 온전히 순수하신 분처럼 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주 안에 거하는 생활을 묘사한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며 의롭게 순결할 수 있을까?

2,28절은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영 안에 계시는 신성한 성령의 기름 바름에 따라(27), 신성한 친교(교통)안에 머무름으로써 하느님의 의와 순결을 지킬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 안으로 돌이켜 머무름(거함)을 통하여 우리는 먼저 빛이신 하느님을 누리며(1,5, 7), 사랑이신 그분을 누린다(4,8, 16). 빛과 사랑은 진리와 은총보다 더 깊다! 빛은 진리의 근원이며 사랑은 은총(은혜)의 근원이다. 신성한 기름 바름을 따라 신성한 친교(교통) 안에 머무름으로써 우리는 진리와 은총을 받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진리의 근원인 빛과 은총의 근원인 사랑을 누린다! 신성한 출생을 기초로 하고, 신성한 생명을 수단으로 하여, 신성한 기름 바름에 따라, 신성한 교통 안에 거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의를 실행할 수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말씀을 영으로 읽고 묵상하며, 쉼없이 화살기도로 중보기도 함으로써 당신의 영 안으로 돌이켜라!

그리고 당신의 영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을 접촉하라!

 

하느님의 영을 접촉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방해하는 원수 마귀를 물리칠 수 있도록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라!

그리고 당신의 영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를 수 있도록 당신의 영을 훈련하라!

그러면 당신은 신성한 생명의 공급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에서도(제2독서) '성인'과 '성인 숭배' 사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알렐루야! 아멘.

 

<‘온전한 구원에 대해서는 http://cafe.daum.net/yoondaniel '로마서 연구를 참고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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