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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4 조회수1,050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1월 4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Everyone of you
who does not renounce all his possessions
cannot be my disciple.
(Lk,14.33)
 
 
제1독서 로마 13,8-10
복음 루카 14,25-33
 

한 여행객이 남미를 여행하다가 안데스 산맥의 오솔길에서 노새를 타고 오는 농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농부의 뒤에는 그의 아내가 노새 없이 그냥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의 아내는 노새를 타고 가지 않습니까?”

그러자 농부는 “저도 아내가 그냥 걸어오는 것이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탈 노새가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자기만 편하게 노새를 타고 가는 것을 미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새가 한 마리밖에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못된 남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이 농부와 같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우선 나의 만족을 먼저 채우고 여유가 있을 때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 있어야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너무 많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차고 넘친 뒤에 베푸는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 형제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더라도 주님을 따르는 사람, 나의 희생이 감수해서라도 베풀 수 있는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자기 소유를 다 버리더라도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을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 주님께서는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 역시 제1독서를 통해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으로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어려운 이웃을 동정하기는 하지만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내가 가진 것 이상을 요구하시는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꾹 움켜잡고서 베풀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원하시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즉, 자기가 가진 것만큼 베풀 수 있는 사랑 가득한 우리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내가 가진 것 이상을 넘어서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속 좁은 나의 뜻일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적당한 합리화를 말하면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말하는 뻔뻔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사랑에는 세상의 합리적인 사고가 통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합리화가 아니라, 그냥 무작정 실천하는 사랑의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2015년도 겨우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것이 없다고 아쉬워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뜻깊은 2015년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절망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황을 바꾸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도록 행동을 취하는 것(제인 구달).


십자가.

 

한 가지 더 헤아리는 마음(‘좋은생각’ 중에서)

어느 날, 한 소년이 등굣길에 풀 한 포기를 발견했다. 그는 풀을 꺾어 스승에게 가져가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한참을 살피던 스승은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고 했다.

“네 아버지가 식물학 박사이지 않느냐? 가서 물어보렴.”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아버지에게 풀을 보이며 말했다.

“아버지, 이 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스승님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풀을 살펴본 뒤 이렇게 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내일 알아본 뒤 가르쳐 줄게.”

소년은 놀랐다. 아버지는 어떤 식물이든 다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소년이 학교에서 수업 준비를 할 때였다. 스승이 다가와 물었다. “어제 보여 준 풀의 이름을 알아냈느냐?” 소년이 아버지가 알려 주지 않았다고 답하자 스승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소년은 전날 스승에게 실망해 그를 비웃었던 걸 진심으로 뉘우쳤다.

풀의 이름도 모르던 스승이 어떻게 갑자기 설명할 수 있었을까? 사실 소년의 아버지는 그 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얘기하면 아들이 행여 스승을 소홀히 생각할까 염려되어 스승에게 전화해 풀에 대한 정보를 주었던 것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게 됩니다. 솔직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모른 척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모른 척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위해서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배려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배려를 통해서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도록 만들어 주지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지만, 조금만 더 크게 생각한다면 어떠한 마음으로 행동해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예쁜 자전거를 보니까 자전거를 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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