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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5 조회수1,631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What man among you having a hundred sheep
and losing one of them.
(Lk.15,4)
 
 
제1독서 로마 14,7-11
복음 루카 15,1-10
 

얼마 전에 뉴스를 보는데 앵커가 이렇게 말하면서 한 뉴스를 보도합니다.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뉴스가 있습니다.”

얼마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뉴스가 없으면 이러한 멘트를 날릴까 싶더군요. 사실 저 역시도 언제부터인지 뉴스를 보고 있으면 화도 나고 또 우울해지면서 기분이 나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보도가 되고 있는 거의 모든 뉴스가 안 좋은 일, 슬프게 하는 일, 힘들게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뉴스를 시청하는 습관이 바뀐 것 같습니다. 전에처럼 뉴스를 방송하는 시간에 처음부터 쭉 보는 것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서 관심 있는 기사만 선별해서 읽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인터넷을 보는 것 역시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좋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악의가 가득한 글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판단하고 또 이 세상에서 아예 사라져야 할 사람처럼 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로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런 모습이 보기 싫다고 사람들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각종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아예 끊어버리는 사람들도 많지요. 소통이 아니라 오히려 불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주님께서는 과연 좋아하실까요? 정의를 위해서 힘쓴다고 격려해 주실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투덜거립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세리들과 죄인들은 절대로 구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구원의 길에서 그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한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솔직히 잃어버린 한 마리 양 때문에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를 버려두고 찾고 있는 사람을 그리고 은전 한 닢 찾기 위해 온 집 안을 뒤지면서 고생하는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애쓰다가 나머지 양에게 해가 될 수도 있으며, 온 집 안을 뒤지면서 고생하는 정성을 쏟느니 그냥 한 닢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생산성에서도 맞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구원의 길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이지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따르고 있었을까요?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과연 예수님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죄인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단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주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몫을 빼앗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동참하면서 사랑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결정된다(애니 딜러드).


양과 목자

 

목표를 잘 보세요.

지난번 여행에서 함께 했던 분으로부터 선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남은 안식년 동안에 심심할 때 맞춰보라면서 2000피스 퍼즐을 선물 받았지요. 퍼즐 상자를 뜯고서는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그런데 하나씩 맞추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그리고 요령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지요.

먼저 모서리와 테두리를 나눕니다. 그리고 겉표지에 완성된 그림을 한참 쳐다보면서 색깔을 구분해서 분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맞추다보면 좀처럼 엄두가 안 나던 그림이 윤각을 드러내게 되고 속도도 붙습니다.

퍼즐을 맞추면서 시작에 앞서 완성된 그림을 오랫동안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삶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내가 생각하는 목표를 떠올리지 않고서 무작정 행동하는 것은 어떤 그림도 완성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학교 안에서, 그리고 내 이웃들 간의 만남 안에서 내가 떠올리고 있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하느님과의 만남 안에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내 삶이 제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그림도 내 삶 안에서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이거 언제 다 맞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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