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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모든 이에게 다가가야 할 교회 / 복음의 기쁨 8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8 조회수810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참 바쁜 세상에서 한 순간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다그친다.

앉아 계신 분, 서 계신 분이나 어떤 것에서 눈을 떼지도 못하고, 손가락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꼭 무엇인가를 해야만 불안이 없는 정상처럼 여긴다.

전부는 아니지만, 해야 할 ‘그 무엇인가’에 공통점이 있다.

‘나만을 위한 일’ 혹은 ‘가족만을 위한 일’이 그것일 게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얽매인 삶의 패튼을 자기만족이기에 ‘위험’이라 보지 않고 행복이라 여길 것이다.

이때 ‘양심’은 거추장스러운 것이니 따질 필요도 없다할 것이리라.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것은 적자생존의 입장에서 의당 자연스럽게 간주할 게다.

더더구나 하느님을 외면하는 것이야 알 바가 아니라면서,

개인적 삶에만 충실하면 행복할 것이라면서 ‘상대주의적 행복’에 젖기도 하다.

그러기에 봉사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인 만큼,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것을 위험하다 여기지 않으리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비교하여 생각하는 것을 ‘실천적 상대주의’라고 꼬집는다.

혹시 우리 교회가 이런 생각에 젖어 하느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게 되면,

울타리 안에 갇혀 자기만의 소외된 만족에 몰두하다가 결국 건전하지 못한 교회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굶주린 이가 지금 문 앞에 서 있는데, 정작 우리만이 문안에서 안주하게 될 것이리라.

한 마디로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복음화에 앞장선 여러 사목 일꾼은

그들의 고유한 영성이나 사고방식에 관계없이 상대주의에 빠질게다.

이는 교리적 상대주의보다 훨씬 위험천만이다.

이것은 그들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가장 깊고 내밀한 선택과 관련되기 때문일 게다.

이 실천적 상대주의는 마치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행동하고,

가난한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결정을 하고, 다른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목표를 세우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더 이상 없는 것처럼 일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탄탄한 교리적 영성적 확신을 지닌 이들마저, 선교를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 헌신하기보다,

흔히 경제적인 안정에 매달리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이나 인간적인 영예를 얻으려는 생활 방식에 빠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꼭 버려야 할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 스스로 ‘선교의 열정’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자.

 

사실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택한 교회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교회는 상대적으로 누구도 배제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모든 이에게 다가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까? 복음에 그 답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친구나 부유한 이웃보다는 오히려 가난하고 아픈 이, 매일 버림받고 무시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 복음의 메시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그 어떤 ‘선교 영성의 과제’는 있을 수 없다.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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