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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8 조회수1,282 추천수1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연중 제32주일


<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


복음: 루카 12,38-44






책을 보는 성모자


보티첼리(Botticelli, Sandro) 작, (1483), 밀라노 폴디 페촐리 미술관



<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 >

 

저의 주위에는 저의 작은 형을 포함해서 노총각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착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개팅을 시켜주면 길게 가는 적이 없습니다. 여자에게 물어보면 글쎄요... 사람은 착한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글쎄요라는 말 안에는 좀 지루하고, 매력이 없어요라고 하는 말임을 잘 압니다. 여자의 손을 잡든지 키스를 하든지 용기가 없다면 여자들은 답답해합니다. 용기를 가져야합니다. 여자들은 착한 남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심장이 뛰는 남자를 원합니다.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남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 남자가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인디에나 존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앞에 덩치가 좋은 채찍을 가진 사람이 위협하며 다가오는데도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오자 총을 꺼내 쏴 버리는 허탈하면서도 우스운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두 사람이 싸우는데 한 사람은 채찍을 가지고 다른 사람은 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사자의 심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총이 없는 사람은 겁을 집어먹고 매력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사자의 심장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을 살고 남도 불행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준 근래에 개봉했던 영화가 [사도]입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일주일 만에 숨을 거둔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버지 영조는 형을 독살하고 왕이 되었으며 비천한 신분 출신이라는 열등감도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왕 자리를 지켜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니 사자의 심장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만은 완벽한 왕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런 다그침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커가면서 아버지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4년간 아버지 앞에서 대리청정, 즉 아버지가 뒤에서 다 조종당하며 꼭두각시 정치를 하는 시간동안 아버지와의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게 됩니다. 무언가를 혼자 결정하면 네가 왕이냐?”고 불호령이 떨어졌고, 물어보면 그런 것도 혼자 결정 못하느냐?”고 윽박질렀습니다. 이에 울화증, 광증, 조울증, 의대증을 앓게 됩니다. 의대증이란 의복을 입으면 다시 아버지를 만나야 된다는 생각에서 옷을 입기를 거부하는 정신질환입니다. 6개월간 아버지에게 인사하러 오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아들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뒤주에 들어가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아들이 밉기도 했겠지만 아들을 뒤주에 죽인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심정도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영조의 이런 비극적인 결말은 결국 자기 자신이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아들이 살아줄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훌륭한 교육자 아버지가 아닌 따뜻한 아버지의 말 한 마디를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따뜻한 말 한 마디 해 줄 수 없었던 이유는 심장이 약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자의 심장이 비록 여자나 자녀에게만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도 매력을 풍깁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나오고 예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생활비까지 모두 다 봉헌하였기 때문입니다. 생활비란 오늘을 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돈입니다. 그것을 다 넣었다는 것은 세상의 눈으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하느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굶어야하는 인생, 그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굶겨 죽이시던지!’ 하는 식을 배짱을 부리는 것입니다. 바로 사자의 심장을 지닌 여자였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온전히 맡기는 과부를 굶기실 수 없으십니다. 그러면 그 과부는 하루하루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계획을 세워 살기 때문에 하느님의 섭리를 느낄 틈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온전히 맡기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사자의 심장을 지니기 위해 가져야 하는 은 무엇일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믿어야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나를 절대 굶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으면 사자의 심장을 가질 수 있고 나쁜 남자의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항상 폐하, 잘된 일입니다라고만 말하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과 그 신하가 함께 사냥을 하러 갔는데 신하가 왕의 총에 총알을 거꾸로 장전해서 왕의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갔습니다. 그러자 신하가 말합니다. “폐하, 참 잘된 일입니다.” 왕이 분노해 그 신하를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듬해, 왕이 다시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 식인종에게 붙잡혔습니다. 식인종들이 가만히 살펴보니 왕의 손가락 하나가 없었습니다. “이 음식은 흠이 있구나라며 그들은 왕을 풀어줬습니다. 식인종에게 풀려난 왕이 감옥에 가서 그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자네 덕분에 살았어. 미안하네.” 그러자 신하가 말했습니다. “폐하,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제가 감옥에 안 들어왔으면 폐하와 같이 사냥을 나갔을 것이고 저는 흠 없는 음식이 되어 저들의 밥이 됐을 것입니다.”

 

위 신하는 사자의 심장을 가진 매력 있는 신하입니다. 그 신하는 어떤 매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무언가를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집트로 팔려갑니다. 거기에서도 모함을 당하여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실망했다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 당당함은 자신의 삶 안에 하느님의 섭리가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에 가지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아내를 통하여 자손을 많이 번성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파라오 왕이 그 아내를 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는 자신의 누이와 같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주어버립니다. 이는 비겁한 행위가 아닙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과부의 헌금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믿음이고 사자의 심장을 지닌 나쁜 남자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은 직접 나서서 이 모든 일을 해결해주십니다. 아버지께 정말 매력이 없는 자녀란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도 두려워하는 자녀입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면에서 장군이 타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넌 왜 아버지와 헤어지게 됐니?”

여인은 뜻밖의 질문에 당혹스런 표정을 짓습니다.

그때는 전쟁 중이었어요. 거리는 온통 불바다였고 저를 보호해 줄 상황이 아니었어요.”

남자가 여인에게 다시 묻습니다.

아버지와 헤어진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

여인은 가슴 속에 묻어둔 말을 꺼내놓습니다.

사실은 ..... 아버지가 제 손을 놓아버렸어요.”

남자가 말합니다.

그렇구나. 사실은 그 사람이 네 아버지가 아니란다.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의 손을 놓지 않는 법이지. 너의 친아버지는 닥터 지바고란다.”

[참조: 차동엽, 주님의 기도 중]

 

만약 주님께서 아버지이심을 믿는다면 그분께서 손을 놓지 않을 것임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유투브의 한 동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도무지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그리고 나서 그 그림의 아래위를 돌려놓으니 가시관 쓰신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 화가는 그런 식으로 그림의 거꾸로 그리는 재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면서 보아도 그 그림을 뒤집기 전까지는 무엇을 그리는지 도무지 알기가 쉽기 않았습니다.

그 동영상을 보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그리려고 하는 하느님의 뜻은 더 알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그림을 뒤집어 그려도 완성되기 전까지는 종잡을 수 없는데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고 하는 계획이야 어떻게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주님의 뜻을 지레짐작하고 스스로의 목적을 세우고 삶을 계획합니다. 저는 처음에 제가 결혼하여 사업에 성공하고 그 돈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도록 계획하셨는지 알았습니다. 신학교에 들어오니 저처럼 헛된 계획을 가진 이들이 많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연극을 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하기 위해 가던 길을 포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독일에서 황정민과의 사이에서 갖게 된 아기를 뱃속에 데리고 짐을 끌고 부산 황정민을 찾아온 김윤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여자 안에 자신의 아기가 있고 독일의 간호사 직업을 다 버리고 가방 하나 들고 황정민을 무작정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 용기가 있었던 이유는 자신 배 안에 그의 자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찾아온 여자를 어떻게 나 몰라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또한 하느님을 난처하게 만듭시다. 우리 안에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사십니다. 그런 믿음으로 대담해질 수 있다면 참으로 매력적인 자녀가 되고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 안에 하느님의 보호하심이 머무를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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