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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찌할꼬! 주님! 이 혼합을 어찌합니까?(1) (히브9,23-28)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9 조회수676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5118/주일복음말씀(2독서)/ 어찌할꼬! 주님! 이 혼합을 어찌합니까?(1) (히브9,23-28)

 

 

<* 오늘 제2독서의 내용은 더 이상 희생 제사와 추가적인 첨가물들, 곧 마리아와 천사와 성인의 기도가 필요하지 않다는 명확한 근거가 된다!>

 

히브9,23절은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조품은 이런 의식으로 깨끗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만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보다 나은 희생 제사로 깨끗해져야 합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23절은 앞의 18-22절에서 언급한 내용을 배경으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조품하늘에 있는 것들이 서로 대조적 병행을 이룬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조품21-22절에서 언급한 장막과 그 모든 그릇을 가리킨다. 이것은 짐승의 피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러한 짐승의 피로 정결케 될 수 없고 더 나은 희생으로 정결케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하늘의 성전이 지상의 성전처럼 더럽혀졌으므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하늘의 성전은 그리스도의 더 나은 희생 제사를 통하여 탁월하게 그 정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하늘 성전에서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사를 반복해서 드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는 단 한 번에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끝내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하늘 성전의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희생 제사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9,24절은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성소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손으로 만든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 나타나십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24절은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 곧 하늘에 있는 것들을 짐승의 피보다 더 나은 희생 제사로 정결케 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참된 것들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 성전 그 자체로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모형에 불과하지만 실체를 이해하는 준거의 틀로서 모세의 행위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서 행하신 사역이 어떠한 성격의 것인지 설명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15-18). 곧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하늘 성전에 올라가신 것은 모세 사역의 성취로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성결케 하는 제사를 통하여 속죄의 사역을 이루시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24절과 25절의 손으로 만든 성소하늘은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손으로 만든 성소와 대조를 이루는 하늘참 장막”(8,2), “사람이 세우지 않고 하느님께서 직접 세우신 장막”(8,2),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8,11),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장막”(8,11)과 같은 개념이다. 특별히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는 모습은 바로 하느님의 존재 앞에 나타나는 대제사장의 모습을 반영한다.

 

25절은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늘이 성전에서 하느님 앞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섬기시는 예수님은 25절에 나타난 것처럼 지상 성전의 대제사장과는 분명한 차별이 있다.

 

이 두 경우의 비교를 통해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차별은, 예수님은 구약의 대제사장처럼 반복해서 성전에 들어가실 필요가 없으므로 자신의 몸을 여러 번 바칠 필요가 없고 단 한 번에 끝내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더 이상 유사한 사건이 필요 없는 종말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종말적인 사건의 성격을 26절은 매우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26절은 그것은, 그가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 하였다고 하면, 그는 창세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 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애시려고, 시대의 종말에, 오직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26절은 25절에 대한 이유를 말한다. 곧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여러 번 드리신다면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이것을 명확하게 해 주는 문구는 그러나 이제는이다. 이것은 종말적 시점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죄를 없이 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 제물로 드려서”, “시대의 종말에”, “오직 한 번”,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시대의 종말에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오심이 종말적 사건임을 명시한다.

 

종말적 사건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을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은 그것이 오직 한 번에 끝냈다는 데 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여러 번에 걸쳐서 발생하지 않았으며 단 한 번에 끝났다. 반복된다면 그것은 종말적 사건이 아니다!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때 그것은 당연히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27-28절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원문 참조)고 말한다. 27절은 다소 앞뒤의 내용과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7절은 28절과의 관계에서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8절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는 바로 27절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모든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처럼(27),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한 번 죽으셨지만,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그 의미가 다르다.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28).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겪는 심판을 당하지 않고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해서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죄 없이 곧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는 방법과는 다르게 나타나실 것이다(28). 예수님의 재림은 그 목적이 초림 때와는 다를 것임을 말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은 잊거나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동경하고 귀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사람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이러한 모순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새 언약이라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역사상 가장 귀하고 탁월한 선물을 허락받았다. 우리는 이러한 선물을 소유한 자로서 최대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바로 이러한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 준다.

 

오늘 제2독서를 통하여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매일 드리는 미사라는 희생 제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미사의 희생제물이며, 이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권능을 부여받은 사제들의 사역에 의해 제단에서 드려지는 제사라는 교회법 또는 교리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과 히브리서 9-10장의 말씀에 따르면, 이 미사라는 희생 제사는 성경에는 없는 유대주의와 이교도주의의 혼합이 교묘히 숨겨져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 드린 희생 제사는 죄를 정결하게 하는 데 충분하므로 더 이상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주교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제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인간이 제정한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가?’ 라는 심각한 진실의 주제에 봉착하게 된다! 곧 가톨릭교회의 성체 성사가 성경에 의한 주의 만찬’(1코린11,23-26)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시며 성체 성사나 그 밖의 다른 제단에서 또다시 자기 몸을 희생물로 드리기 위해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이상 그러한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분은 믿는 모든 이들의 죄와 불법은 단 한 번 자기를 드리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해서 영원히 용서되었다. 그리고 구원받은 믿는 이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왕국에서의 보상을 위하여 성령과 함께하는 선행의 행위를 이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와 불법이 용서되었으니, 죄를 사하는 제사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히브10,18)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또한 미사, 곧 피 없는 희생 제사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은즉 사면(赦免)이 없기 때문입니다.”(히브9,22). 그러므로 성경의 주의 만찬과 미사의 희생 제사는 혼동해서는 결코 안 되며, “주의 상제단과 결코 혼동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는 그리스도교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신약 전체를 통하여 사도들이 그렇게도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유대주의와 이교도주의가 교묘하게 혼합된, 곧 사도들의 가르침을 화려한 겉모습에 숨긴 채 본질을 왜곡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의 미사에 대해서는 성경이 단 한 줄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왜 이렇게 타락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어찌할꼬!

 

평양을 다녀온 정의구현사제단들이 또 '교과서국정화 반대'를 위해 거리 미사를 드린다고 했단다!  이 이단들의 작태를 보면 표준에도 훨씬 모자라는 저질 코미디를 보는 것같다!  

어찌할꼬! 주님! 어찌해야 합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이 중대한 주제를 성경을 읽음으로 확인하시고, 깨달음으로 진리로 자유를 누리며, 나아가 타락한 교회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알렐루야! 아멘.

  

<이 주제를 보충하기 위하여 http://cafe.daum.net/yoondaniel ††† 영원한 십자가!’를 독서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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